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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파괴
2016-10-13 | 이방실 에디터

안녕하십니까, 이방실입니다. 많은 경영자들이 하버드대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제안한 파괴적 혁신, 즉 disruptive innovation에 열광했습니다. 예를 들어 디지털 카메라는 처음에 사진 해상도가 낮고 품질도 조악해서 필름 카메라의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성능 개선을 지속하다가 어느 한 순간 필름 카메라 시장을 붕괴시켰습니다. 초기에 열악했던 제품이 성능을 개선하다가 기존 주류 시장을 장악하는 파괴적 혁신에 많은 경영자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장에서 파괴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을 감지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애플이 혁신적인 아이폰 신제품을 개발하자 블랙베리 같은 기존 스마트폰 업체들은 아이폰 대항마를 출시했습니다. 성능도 개선하고 터치스크린도 도입했고 우수한 성능의 모바일 브라우저도 탑재했습니다. 하지만 신제품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아이폰처럼 완벽하게 새로운 제품이 아니라 기존 제품의 단점을 조금 보완하는데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삼성처럼 기존 피처폰을 보완하는 게 아니라, 기존 제품과 완전히 다른 구조의 스마트폰을 만드는데 성공한 기업만이 생존했습니다. 즉, 시장 수요 측면에서의 파괴적 변화를 설령 감지했다 하더라도 공급 측면에서 완벽하게 새로운 제품 설계를 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조슈아 건즈 토론토대 교수는 ‘제2의 파괴’라는 HBR 아티클을 통해 지금까지 경영학자들은 시장 수요 측면에서의 파괴 현상만 고민했지, 공급 측면에서의 파괴 현상에는 관심이 적었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공급 측면에서의 파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시장에서의 변화를 감지했다 하더라도 기업이 몰락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건즈 교수는 여기서 아키텍처 혁신이라는 개념을 제안합니다. 아키텍처는 여러 부품들이 연결되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앞서 애플은 휴대전화 부품 간 완전히 새로운 연결방식을 적용한 아이폰을 출시했던 반면, 블랙베리는 기존 아키텍처에 새로운 기능 몇 개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가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즉, 기존 아키텍처가 파괴되고 새로운 아키텍처가 등장하는 공급 측면에서의 파괴가 일어날 때 제대로 대응해서 새로운 아키텍처를 만들어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급 측면에서의 파괴 현상, 즉 아키텍처 혁신에 대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통합된 연구개발 조직을 만드는 것입니다. PCB로 불리는 인쇄회로기판을 만드는 기술은 총 4차례에 걸쳐 아키텍처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공급 측면에서의 파괴적 변화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대체로 이 변화를 주도한 신규 진입자가 대부분 시장을 장악했는데요, 놀랍게도 캐논만은 이 네 번의 변화에 모두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이유는 바로 통합적인 조직 때문입니다. 캐논은 통합된 조직체계에서 여러 세대별 기술투자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했다고 합니다. 연구원들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새로운 아키텍처를 유연하게 만들 수 있을 만큼 협력도 매우 잘했다?짹봇? 즉, 아키텍처 혁신에 대응하려면 구기술과 신기술을 동시에 아우르는 CFT, 즉, Cross Functional Team을 운영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공급 측면의 파괴에 적응하지 못한 조직은 부품별 연구조직들이 개별적으로 움직이면서 아키텍처 변화라는 큰 변화의 흐름을 놓치고 말았다고 합니다. 두 번째로 특유한 자산을 갖고 있다면 아키텍처 혁신에서 생존확률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구테베르크가 인쇄술을 개발해서 현재 레이저 조판기술로 발전하기까지 조판 기술은 수차례 혁신을 지속했습니다. 그런데 머건탈러라는 업체는 이 변화의 파고를 모두 버티며 생존했다고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폰트에 대한 특허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군요. 조판기를 사용하는 고객들은 주로 신문사와 출판업자였는데, 이 고객들은 ‘헬베티카’처럼 독특한 폰트로 자신들만의 스타일과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어 했습니다. 따라서 신기술 도입 속도가 조금 늦더라도 폰트에 대한 특허권을 갖고 있는 머건탈러와 거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특유한 자산이 있다면, 아키텍처 혁신의 파고를 넘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중요한 건 기업 정체성을 폭넓게 정의해서 새로운 정체성을 강화해 나가는 일입니다. 코닥이 필름 사업 모델에 얽매여 디지털 사진 사업에서 실패한 건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하지만 후지필름은 달랐습니다. 일찌감치 디지털 사진의 잠재력을 간파했고, 신기술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애초에 이 회사가 자사 사업 영역을 단순히 사진 필름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엑스레이 필름, 마이크로 필름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넓혀간 덕택이 큽니다. 이를 통해 후지필름은 회사의 정체성을 특정 사진 분야를 넘어서, 이미지 및 정보라는 보다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대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폴라로이드 사업부는 그대로 놔두면서도 디지털 이미징 사업부를 새로 만들고 주요 연구개발 부서와 통합함으로써 새로운 사업 영역을 성공적으로 확대해 나갈 수 있었죠. 그 결과 후지필름은 필름 사업 분야에서 디지털 사업 분야로 옮겨가는 데 따른 내부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사업 확장에 성공했습니다. 제품을 구성하는 핵심 부품의 연결 구조가 달라지는 아키텍처 혁신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직 구조와 기업 정체성을 카멜레온처럼 능동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자산은 유지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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