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HBR Korea조진서입니다. 군대를 다녀온 분들이시라면 모두 ‘소원수리’라고 불리는 걸 써보셨을 겁니다. 군생활하면서 불편한 점이나 고쳐야할 점을 써내라는 거죠. 학창시절에도 교실 뒤에 건의함을 만들어놓았던 기억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혹은 의무적으로 소원수리나 건의함에 넣을 이야기를 쓰다보면 정작 하고 싶은 말도 잘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 일본의 한 쇼군이 자기 성으로 들어가는 성문에 이런 건의함을 놓아두었다고 합니다. 거기에다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은 크게 보상했지만, 자기를 비판하는 내용을 써넣은 사람은 추적해서 목을 베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직장에서도 누가 사원들의 목소리를 듣는 익명 건의함을 만들자고 하면 ‘그런 거 해서 되겠어’하는 조롱만 듣기 쉽습니다. 건의의 내용은 둘째 치고, 누가 왜 이런 건의를 한 건지 그 저의만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먼지만 쌓입니다. 그런데 건의함을 실제로 잘 사용하고 있는 기업들도 있습니다. 와튼스쿨의 애덤 그랜트 교수는 건의함 그 자체는 아주 훌륭한 도구인데, 다만 그걸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그랜트 교수는 와튼스쿨 역사상 최초로 20대에 테뉴어를 받은 행동심리학자입니다. 2016년에는 ‘오리지널스’라는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HBR 3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그랜트 교수는 건의함 같은 사소한 도구들도 잘만 사용하면 평범한 직원들의 머리에서 창조성을 뽑아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네덜란드의 한 철강회사는 70년 동안 건의함 제도를 운영해왔습니다. 보통 직원 한 명이 연간 아이디어 예닐곱 건을 제안하고 그 중 절반 정도가 채택된다 합니다. 그 중에는 1년 만에 75만 달러의 비용 절감을 가져온 아이디어도 있었습니다. 또 미국에 와비파커라는 온라인 안경 쇼핑몰이 있습니다. 2015년 미국의 경영월간지 <패스트컴퍼니>가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회사로 선정됐는데요, 이 회사 직원들은 이런 아이디어를 분기당 평균 400개나 제출합니다. 다만 건의함에 넣는 건 아니고, 전사가 공유할 수 있는 구글독스 파일에다 적습니다. 온라인 시대니까요. 그렇게 나온 아이디어들이 뭐가 있을까요. 회원들은 온라인으로 안경테를 5개까지 주문해서 받아본 다음에 마음에 드는 것만 갖고 나머지는 무료로 반송하면 됩니다. 또 점포에서 마음에 드는 안경테를 등록해놓고 나중에 이메일로 그에 관한 정보를 받아보게도 해 줍니다. 그럼 왜 어떤 회사는 건의함에 직원들의 창조적인 아이디어들이 수북하게 쌓이고, 어떤 회사는 먼지만 쌓이는 걸까요? 그랜트 교수는 다음과 같은 팁을 제시합니다. 첫째, 양보다 질이 아니라 질보다 양입니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양에서 질이 나옵니다. 심리학자들의 실험에 따르면, 보통 사람들에게 어떤 주제에 대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40개 정도 내라고 하면, 처음 20개보다 나중 20개가 훨씬 더 독창적이라고 합니다. 처음엔 고정관념을 깨지 못하고 평범한 아이디어들을 내다가, 그를 기반으로 차츰 더 특별한 가능성들을 자유롭게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에니메이션 스튜디오인 픽사는 ‘카’라는 인기 작품을 만들 때 직원들에게 무려 500여개의 기획안을 받았다고 합니다. 결국 다트를 많이 던져야 과녁에 많이 꽂힌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직원들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것 같아도 무시하거나 면박을 주지 말고 계속 더 많은 아이디어를 내라고 독려해야 합니다. 둘째, 직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선별해 포상해야 조직에 흥이 나서 더 많은 아이디어들이 나올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직속상사나 최고경영자가 아니라 아이디어를 낸 사람의 동료들, 특히 예측을 잘 하기로 소문난 직원들에게 평가 권한을 넘겨야 한다는 겁니다. 상사들은 기존의 틀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어서 창조적인 아이디어에 대한 판단력은 떨어집니다. 또 아이디어를 낸 사람 본인은 자아도취하기 때문에 또 제대로 판단이 안 됩니다. 그러니 객관적인 판단은 동료들이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커스단에서 누가 새로 개발한 묘기가 실제 공연에서 얼마나 인기를 끌 수 있을지 비디오를 보고 평가를 시켜보면, 동료 서커스 공연자들이 관리자들보다 두 배 가량 정확하게 예측을 한다고 합니다. 셋째, 공개 경연대회를 열면 좋습니다. 아이디어를 받은 다음 그것들을 놓고 미인대회같은 심사를 하는 겁니다. 글로벌 화학회사 다우케미컬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환경보호를 주제로 한 아이디어 경연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20만 달러 이내의 투자로 1년 이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라고 한 다음에, 동료 직원들이 그걸 평가하게 하고 수상자에겐 현금 보너스도 줍니다. 여기서 지금까지 600개 가까운 프로젝트가 나왔고 평균 수익률은 200%, 액수로는 연간 1억 10000만 달러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렇게 공개적인 경연대회를 하면 좋은 아이디어를 골라낼 수도 있고, 평가에 참여하는 사람들 역시 교훈을 얻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조직 전체적으로 아이디어에 대한 감각이 좋아지고, 아이디어를 내는 데 부끄러워하지 않는 문화가 생기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리더의 역할입니다. 한국적인 문화에서 생각해보죠. 직원이 어떤 아이디어를 냈는데 그게 공개적인 석상에서 반박당하거나 무시당하면, 우리 한국사람들은 보통 그걸 개인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입니다. 체면이 깎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럴 때 좋은 해결책 중 하나는 리더, 가장 상급자부터 체면이 깎여보는 겁니다. 바보같이 들리는 아이디어라도 먼저 직원들에게 막 던져보고, 그에 대해 직원들에게 비판당해보고 반박당해보고 무시당해보고, 또 때로는 좋은 의견이라고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면 어떨까요. 직원들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일에 좀 더 용기를 가지게 될 겁니다. 실제로 제가 요즘 어떤 교육서비스 회사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이 회사 대표님이 서씨인데, 직원들에게 ‘서과장’이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대표가 없는 자리에서 직원들에게 직접 들은 얘깁니다. 매일같이 시시콜콜한 아이디어들을 밖에서 주워들어와서는 직원들에게 ‘이게 될까 안 될까’ 물어본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직원들 사이에서도 시시콜콜한 아이디어를 나누는 문화가 형성됐습니다. 결국 업계에서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신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해서 수십만 회원을 만드는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지금까지 조직에 독창적인 문화를 만드는 점에 대해 이야기드렸습니다. 진정한 창의성은 소수의 천재들만의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모두의 머릿속에서 나온다는 그랜트 교수의 말을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