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유명 섬유 잡지 저널 드 텍스타일>은 매 시즌마다 도매상들에게 각 패션 브랜드의 창의성을 점수로 매겨달라고 요청합니다. 지난 10년간의 점수를 분석한 결과 럭셔리 그룹에 속한 브랜드가 받은 점수는 독립 브랜드가 받은 점수의 세 배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대표적인 글로벌 럭셔리 그룹은 루이뷔통과 디오르 펜디 등을 거느린 LVMH, 구찌와 생로랑 등이 속한 케링, 까르띠에와 몽블랑 등을 가진 리치몬트그룹입니다. 통상 기업의 덩치가 커지면 관료주의가 자리 잡고 창의성은 위축됩니다. 그래서 대부분 산업에서 독립된 작은 기업들이 혁신을 주도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력셔리 산업에서는 초대형 그룹들이 혁신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 대학원 연구팀은 왜 유독 럭셔리 분야에서 초대형 그룹들이 혁신을 선도하는지 해답을 찾기 위해 집중적인 연구를 했습니다. 그리고 HBR 논문을 통해 그 답이 인재 양성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선, LVMH와 케링, 리치몬드 모두 그룹 내에서 인재들을 활발히 순환근무를 시켜 성과를 극대화했습니다. 이 세 그룹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새로운 경험을 위해 회사를 떠날 필요가 없이 그룹 내 다른 브랜드에서 새 도전을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LVMH 브랜드 매니저 직에 공석이 생긴다면 약 3분의 2가 내부 인재로 채워집니다. 원활한 순환근무를 위해 럭셔리 그룹들은 좋은 평가를 받은 직원들을 인재 풀에 등록시켜 관리하고 개별 브랜드에서 사람을 찾을 때 인재 풀에 소속된 직원을 충원하도록 유도합니다. 럭셔리 그룹은 순환근무와 관련해 다른 업종의 기업과 다른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럭셔리 그룹의 직원들은 보통 자신이 인재 풀에 등록돼있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합니다. 또 다른 산업에서는 인재의 이동 경로가 미리 정해진 경우가 많은데, 럭셔리 그룹들은 미리 정해진 트랙 없이 상황에 따라 이동이 이뤄진다고 합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럭셔리 업계의 특성상 이런 순환근무 시스템이 더 도움이 된다는 게 연구자들의 설명입니다. 실제 순환근무제는 큰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계 브랜드들은 통상 기술력과 디자인이 우수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대형 그룹에 소속된 한 시계 브랜드는 화장품 및 패션 브랜드 마케팅 관리자를 영입했고, 신규 인력들은 과거와 완전히 다른 접근을 했습니다. 시계를 제작하는 장인들의 철학을 담은 스토리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화장품 분야에서 차별화를 위해 활용한 스토리텔링 기법이 시계 분야에 도입되면서 마케팅 측면에서 큰 성과를 냈다고 합니다. 럭셔리 브랜드들은 또 퇴사한 직원도 다시 재고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외부에서의 경험이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럭셔리 브랜드 그룹이 인재 경영에서 주목할 또 다른 점은 해외근무 강조입니다. 해외 근무는 임원들의 자질 개발과 능력 향상에 도움을 줍니다. 저널드텍스타일>이 지난 10년간 패션 바이어들을 통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해외 근무나 거주 경험이 있는 디자이너들이 없는 디자이너에 비해 창의적인 결과물을 낼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파리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교육을 받은 ‘셀린느’의 디자이너 피비 필로나 스스로를 ‘1인 다국적 패션 센세이션’이라 부르는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는 다문화 체험을 바탕으로 성공한 대표적 예입니다. 케링그룹은 다문화 체험을 위해 ‘영감을 찾는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외 경험이 너무 과한 것도 경계해야 한다는군요. 파리나 밀라노 등 패션 중심지에서 벌어지는 일과 멀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럭셔리 업체 관계자는 “20대, 30대에는 여행을 많이 다니며 경험을 쌓아야 하고 40대는 회사의 전략적 우선순위 등 그룹 차원의 업무 이해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밖에 럭셔리 그룹은 두 가지 트랙으로 인재를 영입합니다. 첫째, 럭셔리 산업에 적합한 교육 프로그램 지원과 채용 입니다. 예컨대 LVMH와 케어링, 리치몬드는 함께 프랑스 ESSEC 경영대학에 개설된 럭셔리 브랜드먼트 MBA과정을 지원하고 졸업자를 채용합니다. 두 번째 트랙은 다른 업계의 인재 영입으로 패션 부문에서 취약했던 영역들을 보완하는데 활용합니다. 루이뷔통은 과거 도요타 자동차에서 몇몇 임원을 영입해 공급망 관리체계를 개선했습니다. 이를 통해 도요타처럼 소비자의 수요에 관한 정보를 하청업체들과 실시간 공유해 생산 일정을 적절하게 조율할 수 있게 됐습니다. 순환근무로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글로벌화를 적극 추진하며 다양한 영역의 인재를 영입하는 럭셔리 그룹의 전략은 관료화된 많은 대기업들에 교훈을 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