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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화를 넘어선 ‘증강’의 미학
2015-10-14 | 이방실 에디터

지난해 10월 흥미로운 외신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벤 버냉키 전 FRB 의장이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 연장을 받으려다 거절당했다는 내용이었죠. 퇴임 후 엄청난 강연료 수입이 예상됐던 그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대출연장 신청서를 일괄적으로 검토하는 은행의 자동화 시스템이 문제였습니다. 버냉키 전 의장이 정규직 공무원 신분에서 은퇴한 비정규직으로 신분이 변하자, 자동화 시스템이 그를 ‘고위험군’으로 분류하고 대출연장 부적격자 판정한 겁니다. 이 일화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경영학계의 거장인 토마스 대븐포트 뱁슨대 교수는 HBR 기고문을 통해 “컴퓨터가 의사결정을 내릴 때 왜 사람이 반드시 개입해야 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습니다. 자동화의 오류를 잡아줄 수 있는 건 오직 인간밖에 없다는 게 대븐포트 교수의 주장입니다. 기술 진보로 인해 자동화의 물결이 점점 거세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 역시 커지고 있죠. 하지만 대븐포트 교수는 “‘자동화(automation)’는 위협이 아니라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증강(augmentation)’의 기회로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기계로 인해 전통적인 일자리는 줄어들지 모르지만, 오히려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려 고용 가능성이 증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고 불평만 하기보다는, 기계와 함께 일하며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에 대해 고민하는 편이 훨씬 현명하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인간과 기계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대븐포트 교수는 크게 다섯 가지 길을 제시합니다. 올라서기, 비켜서기, 끼어들기, 좁게서기, 전진하기입니다. 거시적이고 종합적 사고 능력을 토대로 자동화 시스템 위로 올라선 이들에겐 언제나 일자리가 준비돼 있습니다. 오늘날 월스트리트에서 막대한 재력을 자랑하는 투자은행가와 헤지펀드 거목들이 그 증겁니다. 풍부한 경험, 날카로운 통찰력, 변화를 포착하는 능력에 힘입어 자동화된 거래 시스템과 포트폴리오 관리 시스템 위에 올라선 대표적 예죠. 주택담보대출 연장 신청에서 어이없게 거절당한 제2, 제3의 버냉키가 생겨나지 않도록, 컴퓨터가 하는 작업을 매의 눈으로 감시하고 조정하며 끼어드는 역할을 하는 이들도 미래에 여전히 각광받을 것입니다. 비록 입지는 좁지만, 자동화를 해 봤자 채산성이 맞지 않을 게 뻔한 틈새 분야에서 전문 역량을 발굴하는 것도 고용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종이 감별사라는 직업이 있습니다. 종이 질감만으로 언제 어디서 생산된 종이인지를 알아맞히는 직업입니다. 이런 능력을 컴퓨터로 자동화시킬 수는 있지만 이를 사용하는 곳이 매우 제한적이어서 자동화에 따른 채산성이 거의 없습니다. 역사가와 미술품 감별사처럼 틈새시장은 컴퓨터 알고리즘이 주도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차세대 컴퓨터와 인공지능 도구 자체를 개발하는 주역이 되는 길도 있습니다. 뛰어난 기계 뒤에는 반드시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예 기술 트렌드를 선도하며 앞서나가는 것도 채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자동화가 위협이 아닌 새로운 기회로 활용하려면, 인간과 컴퓨터가 같이 일하는 편이 각각 따로 일하는 것보다 낫다는 사실을 고용주가 믿어야만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영리한 기계를, 인간을 위협하는 적군이 아니라, 지식 노동의 동반자이자 협력자로 보는 사람들만이 최후 승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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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실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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