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고승연입니다. 오늘은 흥미로운 사례 하나로 얘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10년 전 미국의 한 혁신컨설턴트는 디트로이트 지역의 한 건설사로부터 신규 아파트 분양률을 높여달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이 건설사는 은퇴나 이혼 등의 이유로 집을 좀 줄여서 이사했으면 하는 사람들을 주 고객으로 삼았는데요, 타깃층의 구미를 당길 수 있게 12만 달러에서 20만 달러 사이로 적절한 수준에서 분양가를 책정하고 고급 마감재를 사용해 럭셔리함을 더했습니다. 이른바 가성비를 높인 것이죠. 그 외에도 여러 면에 세심한 배려를 했다고 합니다. 삐걱거리지 않는 바닥재를 깔고 지하실은 3중으로 방수처리를 하는 한편 화강암 싱크대 상판을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꽤 괜찮아 보이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영업팀 인력을 충분히 확보해 주 6일 고객응대 시스템도 갖췄습니다. 그리고 주요 신문의 일요판 부동산 섹션에 대대적인 분양광고를 실었다고 합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실제로 견본주택을 보러 온 사람은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분양을 받겠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는군요. 건설사에서 만든 ‘포커스 그룹’ 사람들은 뭔가 불편함이 있겠거니 하고 새로운 창문을 만드는 등 여러 아이디어를 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분양율이 올라가진 않았습니다. 건설사는 인구통계학적인 분석방법을 동원해 도대체 어떤 이들이 어떤 니즈를 갖고 있는 것인지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인터뷰나 데이터 분석을 통해서도 ‘누가 어떤 문제로 왜 분양 받기를 꺼리는지’를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듭되는 인터뷰 과정에서 단서 하나가 나왔다고 합니다. 바로 ‘식탁’입니다. 이미 분양을 받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전에 살던 집에 있던 정찬용 식탁을 어떻게 처리할 지만 결정되면 바로 입주하겠다’고 말한 겁니다. 가구 처리가 뭐 그리 어려운일이라고...그러다가 이 혁신 컨설턴트는 한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성탄절에 자신들의 가족과 밥을 먹다가 말입니다. 무엇이었을까요? 사람들에게 식탁이란 ‘가족의 상징’이자 ‘추억의 집합체’였던 겁니다.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다른 것은 별 문제가 없었는데 추억이 가득 담긴 식탁 만큼은 함부로 버릴 수 없었던 것이었죠. 그래서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의 내부를 조금 변경해 손님용 방 크기를 줄이고 식탁을 놓을 자리를 확보합니다. 이렇게 고객의 니즈를 ‘해결과제’라는 관점에서 보기 시작했더니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아파트 건설 사업은 ‘살 곳을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라 ‘삶을 옮겨주는 사업’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죠. 입주자들이 ‘이사’라는 거사를 치르는 데 따르는 불안을 줄이는 서비스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사업체 서비스를 제공하고 2년간 창고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아파트 부지에 물품 분류실을 따로 마련해 신규 입주자들이 버릴 물건을 시간을 두고 천천히 골라내도록 배려했습니다. 고객의 ‘해결과제’에 대한 이런 통찰 덕분에 이 건설사는 경쟁사들이 모방하기는커녕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방법으로 차별화를 이뤄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새로운 관점이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이 아파트의 분양가는 3500달러나 올랐는데, 이사 서비스와 창고 비용을 충당하고도 수익을 남기는 액수였습니다. 2007년 업계 매출이 49%나 급감하고 시장이 곤두박질치는 와중에 이 회사는 오히려 25%나 성장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사례는 최근 하버드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고객의 해결과제를 파악하라’라는 기사에 나온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그깟 식탁이 정말? 이라고 생각하셨나요? 중요한 건 ‘식탁’으로 상징되는 ‘삶과 추억’입니다. 여기에서 고객이 진짜로 원하는 해결과제를 찾아냈고 ‘삶을 옮겨주는 사업’으로 주택건설사업을 재정의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토록 어렵다는 ‘혁신’의 본질일지도 모릅니다. 이 아티클은 파괴적 혁신 혹은 와해적 혁신으로 유명한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교수와 그의 동료들이 쓴 것인데요, 바로 ‘왜 많은 기업들은 그토록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제대로 혁신을 하지 못하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서술된 글입니다. 그러나 이 ‘해결과제’를 일종의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서도 안 됩니다. 그럼 해결돼야 할 ‘과제’란 무엇일까요? 크리스텐슨 교수는 ‘과제’란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이 정말로 달성하고 싶어하는 것을 편의상 나타낸 말이라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앞선 사례에서 은퇴자나 이혼자들이 구입하는 아파트는 ‘다운사이징’이라는 특정한 상황 속에서 삶의 방식이 바뀌는 구매이기에,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와는 과제가 다르다는 거지요. 이런 ‘상황’은 고객의 개인적인 특징, 제품의 속성, 신기술 혹은 트렌드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합니다. 처음에 그 아파트가 분양이 잘 안됐던 이유는 ‘상황적인 이해’를 못하고 그저 ‘이상적인 아파트’를 제공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파트가 경쟁해야하는 상대는 다른 회사의 신축 아파트가 아니라, ‘과거에 살던 단독주택에서 눌러 살고 싶다’는 고객들의 생각이었는데 말입니다. 혁신이론의 대가답게, 크리스텐슨 교수는 여기에서 아파트를 구매할 잠재고객들이 주택구매와 이사에 따르는 매우 번거로운 과정을 해결해준 것이 핵심이었고, 그것이 바로 ‘좋은 혁신’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좋은 혁신이란, 지금까지 마땅한 해결책이 없었거나 솔루션이 아예 부재했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이러한 해결과제는 단순히 기능 측면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식탁’으로 상징되는 ‘추억’과 정서. 즉 사회적이고 정서적인 측면까지 고려하는 해결이어야 진정한 해결이고 그것이 좋은 혁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좋은 혁신을 위해 해결과제를 파악해야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요, 크리스텐슨 교수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질문을 던져보라고 권합니다. 첫째, 해결해야할 과제가 있는가?부터 물어야 합니다. 노인이나 아이, 반려동물을 돌봐 줄 인력을 중개해주는 케어닷컴의 경우 해겷해야 할 과제를 잘 찾아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둘째,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지 않은 고객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대학으로 꼽히는 서던뉴햄프셔대는 전통적인 고객인 고등학교 졸업생이 아니라, 이런 저런 이유로 대학을 마차지 못한 30대 이상의 고객층을 대상으로 온라인 과정을 만들어 크게 성공했는데요, 기존 대학이 무시했던 고객층을 새로 발굴해낸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 세 번째로 고객들이 아쉬운대로 어떤 차선책을 생각했는지를 묻고 알아봐야 합니?? 재무 소프트웨어 기업인 인튜이트는 소기업들이 개인용 자산관리 프로그램을 사용해 회계처리를 한다는 점을 간파하고 소기업용 제품을 만들어내서 큰 시장을 창출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사람들이 어떤 과업을 피하고 싶어하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릭 크리거라는 사업가는 중이염 같은 일상적 질병에 대한 치료를 받을 때에도 병원에 가서 오래 기다렸다가 진료를 해야 하는 관행을 피하고 싶어한다는 고객 경험을 토대로 간단한 질병의 경우 예약없이 방문해 즉시 약을 처방해주는 사업으로 크게 성공했습니다.지금 이 영상을 보시는 여러분들도 ‘왜 좋은 물건인데, 정말 최고의 서비스인데 팔리지 않을까? 반응이 시원치 않을까?’라는 고민이 있다면, 크리스텐슨 교수의 조언대로 하나 하나 질문을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