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이방실입니다. 최근 많은 경영학자들에게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전통적인 교과서에서 알려준 재무회계 이론이 잘 들어맞지 않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입니다. 매출액으로 보나 이익 규모로 보나, 다음이 카카오보다 훨씬 큽니다. 자산도 다음이 훨씬 많죠. 전통적 재무이론에 따른다면, 다음의 기업가치가 카카오보다 훨씬 높게 평가돼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실제 합병 비율을 산정할 때, 카카오의 기업 가치가 다음보다 훨씬 높게 나왔죠.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는 바로 이런 문제와 관련해 유용한 통찰을 제공해주는 아티클이 실렸습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컴퍼니의 파트너이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글로벌 컨설턴트 25인 중 한 명으로 꼽힌 마이클 맨키스와 그의 동료들이 쓴 아티클입니다. 과거의 투자 관행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이제는 새로운 투자 규칙을 써야 할 때라는 게 이들의 주장입니다. 맨키스와 베인의 동료 컨설턴트들은, 지금은 자본이 넘쳐나는 시점이라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자본이 부족했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라는 거죠. 지난 반세기 동안 기업 경영자 대부분은 자본을 가장 소중한 자원으로 여겼습니다. 희소한 자원이었고, 그만큼 귀했으니까요. 따라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 프로젝트를 선별하고, 가장 성공가능성이 높은 소수의 프로젝트에 투자를 집중하는 전략을 취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돈이 남아도는 시대에는 이런 접근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강조합니다. 베인&컴퍼니의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금융자본은 지난 30년 간 3배 이상 늘었다고 합니다. 그림을 한번 보시죠. 1990년 글로벌 금융자산은 220조 달러였지만 2010년엔 600조 달러로 늘었고, 2020년이면 약 900조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합니다. 금융자산의 글로벌 GDP대비 비중을 한번 볼까요? 1990년엔 6.5배, 2010년엔 9.5배 수준이었고, 2020년엔 10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자본이 풍부해지면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자본조달비용은 당연히 낮아지겠죠? 다음 그래프에서 이런 사실이 잘 드러나는데요, 베인이 1600여 개 글로벌 기업들을 대상으로 가중평균자본비용을 분석한 결과, 1980년에 자본비용은 약 16%에 달했지만 지금은 약 5 내지 6%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현재 많은 대기업들에 있어서 세후 차입 금리는 물가상승률에 가까워서, 실제 차입 비용은 ‘제로’나 다름없다는 게 베인의 분석입니다. 한 마디로 돈이 넘쳐나는 세상이란 뜻입니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당연히 게임의 룰도 달라져야겠죠? 변화된 세상에서 새롭게 적용해야 할 전략의 규칙은 뭘까요? 베인은 크게 세 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합니다. 첫째, huddle rate, 즉 최소 요구투자 수익률을 낮춰야 하고, 둘째, 수익성보다 성장에 집중하는 전략을 펼쳐야 하며, 셋째, 모험적이고 실험적 프로젝트에 과감히 투자하라는 조언입니다. 우선 huddle rate입니다. 현재 많은 기업에서 내부적으로 설정해 놓은 huddle rate은 실제 자본비용에 비해 너무 높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미국 제조업 생산성 혁신 협회의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대부분 제조업체들이 10년 넘게 huddle rate을 12 내지 14% 수준으로 고정시켜 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즉 연 12%이상 수익을 낼 수 있울 것으로 예상되는 프로젝트에만 투자를 하는 기업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베인은, 대부분 기업에서 설정해 놓은 huddle rate이 실제 자본비용보다 6.5%포인트에서 7.5%포인트 정도 높다고 추산합니다. 이처럼 huddle rate이 비정상적으로 높다 보니 너무 많은 투자기회가 거부되고 있고, 기업들은 쌓여가는 현금을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쓰고 있다는 거죠. 따라서, 변화된 환경에서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찾기 위해선, 먼저 투자 결정의 시금석이 되는 huddle rate부터 과감하게 낮출 필요가 있다는 게 베인의 주장입니다. 두 번째, 수익성 제고보다 장기적 성장에 보다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처럼 자본조달비용이 낮은 시대에는 성장에 집중하는 전략적 결정이 기업 가치 제고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베인이 분석한 그래프를 한번 보시죠. 성장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인해 기업 가치가 증가하는 정도는 가중평균자본비용의 변동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자본비용이 6%로 지금처럼 낮을 때는, 장기성장률이 1% 높아지면 기업의 본원적 가치가 무려 27%나 늘어납니다. 하지만 자본비용을 9%로 가정하면 기업 가치 상승폭이 7%로 급락합니다. 심지어 자본비용이 15%에 달하면 아예 성장 중심의 투자를 안 하는 게 낫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 그래프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수익성 개선 노력이 기업가치 제고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자본비용이 얼마냐에 상관없이 기업 가치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상승합니다. 따라서, 자본비용이 높을 때는 수익성에 치중하는 전략이, 지금처럼 자본 비용이 낮을 때엔 성장에 치중하는 전략이 현명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 실험적 투자입니다. 자본이 부족하면 아무리 강심장을 가지고 있어도 섣불리 투자하기가 어렵겠죠. 당연합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본이 넘쳐나면 모험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합니다. 미래에 확실히 성공할 프로젝트에만 투자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을 예로 들어보죠. 2005년 이후 알파벳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벤처에 투자했습니다. 그 중에는 유튜브나 네스트처럼 세간에 널리 알려진 것도 있지만, 식료품 배달, 온라인 자동차보험 비교 서비스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투자도 많습니다. 당연히 성공한 사례도 많지만 실패한 사례도 부지기숩니다. 지난 3년 동안 알파벳은 스마트홈 기업 Revolve의 문을 닫았고, 자동차 보험 사이트인 Google Compare서비스를 중단했으며, 레노보에 Motoralo Mobility를 팔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알파벳은 성층권에 대형 풍선을 띄워 전 세계 구석구석, 심지어 외딴 시골 지역까지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글로벌 무선인터넷 구축 프로젝트, 일명 ‘Loon Project’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모험적이고 실험적인 태도를 통해 알파벳은 많은 혁신적 아이디어를 탐색하며 성장을 향한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베인은 이 모든 일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선 인적 자본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성공적인 신제품이나 서비스, 신규 사업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최근 라는 책을 펴낸 마이클 맨킨스의 분석에 따르면, 인적 자본 관리에 공을 들이는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평균 40% 정도 생산성이 높다고 합니다. 이런 생산성의 차이는 업계 평균보다 훨씬 높은 영업이익률로 이어집니다. 앞서 말씀드린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자산의 절대 규모로 볼 때 카카오는 다음보다 열등하지만, 창의적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도할 수 있는 사람과 방대한 고객 기반을 갖추고 있기에 현실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돈이 넘쳐나는 시대를 맞아 기존 관행을 과감하게 재검토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