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장윤정입니다. MIT에 40여 년간 몸담아온 화학공학자이자 조직공학 분야의 선구자 밥 랭어를 아시나요? 일명 ‘의학계의 에디슨’이라고 불리는 랭어의 업적은 눈부십니다. 1100건이 넘는 특허권 등을 3000여개가 넘는 제약, 화학, 생명공학, 의료기기 회사에 제공했습니다. 그의 연구소 ‘랭어랩’이 단독으로, 또는 타 기관과 공동으로 설립한 회사만 해도 40개에 이릅니다. 사실 랭어랩이 내놓은 ‘최고의 작품’은 사람입니다. 석사학위 취득자 또는 박사 후 연수자로 이 연구소에서 근무했던 900여명 가운데 수십 명이 학계, 산업계, 벤처캐피털 분야에 진출해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14명은 미국공학한림원, 12명은 미국의학한림원에 추대되기도 했습니다. HBR은 학교와 기업, 정부에 속한 연구소는 물론이고 서로 다른 걸출한 인재가 모인 집단을 이끌어야 하는 리더들에게 랭어의 모델을 제시합니다. 랭어는 신속하게 연구결과를 도출하고 학문적 성과를 제품화해 선보이기 위한, 5가지 접근법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사실 많은 조직들이 연구에 엄청난 비용을 쏟고 있지만 그에 걸맞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데요. 랭어가 연구결과를 제품으로 변환하는 과정을 참고해 이를 적용한다면 기업들 역시 한층 훌륭한 연구 성과를 얻고 참신한 제품을 개발하는 한편 사업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혁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첫 번째 전략은 파급효과가 큰 문제에 집중하기입니다. 랭어는 프로젝트를 선택할 때 프로젝트가 벌어들일 돈이 아니라 사회에 미칠 영향에 주목했습니다.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고객들의 돈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본 것입니다. 사실 대기업들의 경우, 제품 아이디어가 너무 급진적이면 대부분 보통 그 제품의 생산을 진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랭어는 달랐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회적인 영향을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느냐고요? 랭어의 기준은 결과물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인구 수 입니다. 1996년부터 시장에서 판매중인 랭어랩 제품 중에는 뇌에 이식해 뇌종양의 일종인, 교모세포종이 발생한 부위에 바로 화학치료를 실시하게 할 수 있는 칩이 있습니다. 당뇨의 잠재적 치료제 역시 랭어랩이 개발했죠. 벤처캐피탈 회사 폴라리스 파트너스는 랭어랩이 이 같은 각종 제품으로 전 세계 47억 명의 삶에 잠재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각종 연구재단은 이처럼 구체적이고 원대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랭어랩에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빌앤멜린다게이츠 재단 등 다양한 재단과 기업이 랭어랩의 연구예산인 1730만 달러 가운데 63%를 지원합니다. 물론 랭어랩은 프로젝트를 선택할 때 사회적 파급력 외에도 프로젝트가 연구소의 주력분야와 잘 맞는지, 해당 의학적·과학적 과제가 기존 과학을 적용하거나 확장해 해결될 가능성이 있는지도 따져봅니다. 적절한 프로젝트를 선택해 첫 단추를 잘 꿰었다면 이제 그 것을 실현하기 위해 기나긴 험로, 즉 ‘죽음의 계곡’을 건너야만 합니다. 랭어는 어떻게 해야 초기연구와 상업용 개발 사이의 계곡을 지혜롭게 건널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일단 특정한 용도뿐만 아니라 다양한 응용이 가능한 기술에 주목합니다. 예컨대 랭어랩에서 2001년 협업을 통해 설립한 기업 ‘모멘타’의 당초의 목적은 암, 급성 관상동맹 증후군 등의 질환의 치료하기 위한 헤파린(다당류의 일종)의 배열을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술이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의약품 로베녹스의 복잡한 구조를 파악, 복제약을 만드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결과 심부정맥 혈전증의 예방과 치료를 위한 제품이 탄생했고, 이 제품은 출시 첫해에만 10억 달러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랭어랩은 폭넓은 특허권을 확보하고 라이선스를 허용하는 일에도 적극적이며 상업화에도 연구자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킵니다. 지난 몇 해 사이에 랭어랩의 많은 연구원들이 그들의 프로젝트를 이어받은 기업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랭어 역시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탄생한 보스턴 지역 10개 스타트업의 이사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랭어랩은 “기술을 시장으로 옮기는 열정이 전문지식만큼이나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공동연구진을 꾸리는 것도 또 하나의 전략이었습니다. 랭어랩에는 화학공학자, 기계공학자, 전기공학자, 분자생물학자, 의사, 수의사, 재료과학자, 물리학자, 약학자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일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진 연구자들이 한 팀으로 묶이자 엄청난 시너지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에를 들어 위장 속에 머무르며 수 주일에서 수개월간 약물을 서서히 방출하는 경구투여 약물전달 장치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연구팀은 당초 별 모양으로 구상했습니다. 하지만 토론을 통해 다양한 대안을 검토하다가 육각형 별이 캡슐을 넣기에 적합하고, 위에 머무르는 기능도 가장 탁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렇듯 다양한 인력이 뭉친 랭어랩에는 현재도 119명의 세계 각국출신 연구원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매 학기마다 30~40명의 학부생을 받고 있습니다. 잦은 인력 회전을 수용하는 것도 또 하나의 전략입니다. 여느 대학 연구실과 마찬가지로 랭어의 연구실에도 계속해서 누군가가 들어오고 또 떠나갑니다. 신입 연구원들은 지속적으로 훈련을 받다가 주로 생산성이 최고조에 오른 시기 연구소를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랭어와 동료들은 인력회전의 이점이 단점을 압도한다고 봅니다. 우선 참신한 기각으로 문제를 보게 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는 이를 가리켜 ‘지속적 자극’이라고 지칭합니다. 누군가는 이를 비효율적인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랭어랩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다양한 경험을 지닌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한데 모였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교수들은 풍부한 지식과 해당분야의 연구 역사를 꿰뚫고 있고, 학생들과 박사 후 연구자들은 열정과 의욕이 넘치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풍부합니다. 여기에 프로젝트 수행기간은 정해져있으므로,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됩니다. 고용기간이 정해져 있는 의욕 충만한 슈퍼스타 팀, 성공한 과학자의 지도, 시간제한이 있는 프로젝트, 결과를 내야한다는 압박감. 이 것이 랭어랩의 경쟁력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지휘하되 간섭하지 않는 랭어의 리더십입니다. 랭어랩의 전현직 연구실 구성원들은 랭어에 대해 사람들의 가능성을 일깨우고, 어떤 일에 공을 들일지 스스로 결정하게 내버려두는 타입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랭어는 프로젝트가 순조로운 출발을 하고, 제대로 체계를 잡을 수 있도록 지도를 아끼지 않고, 어떤 대안을 고려할지 결정하는 것도 돕습니다. 하지만 딱 거기에서 손을 떼버립니다. 연구자들 스스로가 질문을 던지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돕습니다. 단, 난관에 부딪힐 때는 랭어 자신과 그의 네트워크 내 전문가들에게 의지할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한때 랭어랩에서 연구한 적이 있는 덴버대 경영학과 조교수인 에이미 해밀턴은 이를 ‘유도형 자율성’이라고 부릅니다. 랭어는 아이패드를 항상 휴대하고 다니며 몇분 안에 이메일에 회신하곤 합니다. 그는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연구소를 떠나는 사람들이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연구소를 거쳐 간 수백 명과 연락을 계속하면서 필요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벤처투자자들과도 가족 같은 관계를 유지합니다. 인맥에 대한 랭어의 이 같은 투자는 연구협력의 생산성을 높이고, 연구소에 뛰어난 학생들을 소개받고, 스타트업의 인력자원을 확보하는 귀중한 성과를 낳았습니다. 어찌 보면 랭어랩의 본질적인 요소는 ‘랭어’ 그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세계 최고의 생산성과 수익성을 자랑하는 연구기관, 랭어랩. 랭어랩의 가치와 모델을 효과적으로 응용하면 우리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