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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도 다 때가 있다. 기술에만 매달리지 말고 ‘생태계’를 살펴라
2017-05-01 | 김현진 에디터

안녕하십니까. 김현진입니다. 결혼을 성사시키는 가중 중요한 요소가 뭘까요? 직업, 성격, 조건 등 다양한 요인들이 거론되지만 타이밍을 꼽는 분들도 많습니다. 천생연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결혼을 하고 싶은 타이밍에 마침 내 곁에 있는 인연과 결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술 세계에도 이런 ‘타이밍론’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들려드릴 얘기는 미국 다트머스대와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들로 이뤄진 연구진이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때를 잘못 만난 좋은 기술’입니다. 지난 30년 간 경영학계를 뜨겁게 달군 화두는 ‘창조적 파괴’입니다. 사물인터넷, 3D프린팅, 클라우드 컴퓨팅, 맞춤 의약품, 가상현실 등이 창조적 파괴를 선도한 대표적인 기술들입니다. 실제 이런 기술이 일으킨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많은 기업들이 도태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학계의 다양한 연구들을 통해 파괴적 혁신이 얼마나 큰 위협이 될지에 대해서는 예측은 어느정도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이러한 기술이 언제 시장에 파괴적 변화를 불러올지에 대한 연구는 드물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타이밍과 관련해서는 예측이 무척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차량 공유 서비스의 선두주자인 우버나, 소셜 네트워크의 대명사 트위터처럼 어떤 기술이나 기업은 하룻밤 사이에 스타로 떠오르지만 HDTV와 클라우드 컴퓨팅 같은 기술은 제대로 무르익는데 수십 년이 걸리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어떤 신기술은 이전 기술을 신속하게 대체하는 반면 어떤 기술은 아주 점진적으로 궤도에 진입합니다. 그 메커니즘을 파악한다면 특정 기술이 언제 시장을 장악할지 타이밍을 보다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혁신 분야의 거장급 연구자인 론 애드너 다트머스대 교수 등은 두 가지 방법을 통해 타이밍을 예측해볼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 첫째는 해당 기술 뿐 아니라 그 기술을 뒷받침하고 있는 생태계를 폭넓게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요소는 기술 간 경쟁이 아니라 새로운 생태계와 기존 생태계 사이에서 경쟁이 펼쳐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럼 먼저 신기술을 내놓기에 앞서 생태계의 수준을 살피는 방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통상적으로 기업들은 해당 기술이 상업적인 전성기를 맞기까지 얼마나 더 개발이 필요할지, 생산에 따른 경제성이 있는지 살핍니다. 하지만 간과하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콘센트에 꽂기만 하면 불이 들어오는 전구를 개발하는 것처럼, 기존 생태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신제품이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면 그냥 열심히 제품만 잘 만들면 성공이 보장됩니다. 하지만 대다수 기술들은 이처럼 멍석만 깔아준다고 통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히려 기술의 가치 창출 능력은 생태계의 주요 부분들이 어떻게 개발되는지에 그 성공이 달려있습니다. 앞서 예로든 HD TV가 대표적인데요, HD TV가 제대로 시장에 자리를 잡으려면 TV제조업체만의 노력으로는 역부족입니다. 일단 고화질 카메라로 방송 콘텐츠 제작이 이뤄져야 하고, 방송 전송 설비 또한 대대적으로 교체해야 합니다. 또 방송 관련 규제와 표준 기술도 새롭게 제정되어야 합니다. 사실상 방송 콘텐츠 제작 및 유통과 관련한 전체 생태계는 물론 규제당국까지 새로운 생태계에 적응해야 HD TV서비스가 시장에서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1980년대에 이미 HD TV기술이 개발됐지만 상용화되기 까지 무려 30년 가까이 시간이 걸린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서 1980년대에 HD TV기술을 개발한 개척자들은 실리를 많이 챙기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혁신의 타이밍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신기술 생태계 외에 기존 기술 생태계와의 경쟁도 고려해봐야 합니다. 기존 기술이 만약 진화를 거듭한다면 신기술의 확산에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RFID등 혁신적인 신기술이 개발됐지만, 여전히 유통 매장에서는 바코드가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유는 기존 바코드 생태계가 개선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코드 주변의 IT기술이 발달하면서 바코드로도 더 많은 정보를 추출할 수 있게 되면서 바코드 생태계는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RFID기술은 빠르게 확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신기술의 생태계와 기존 기술의 생태계가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때 신기술이 기존기술을 누르고 승리를 하려면 고객들이 신기술의 잠재력을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생태계가 빠른 속도로 충분하게 발달해야 합니다. 반면 기존 기술이 승리를 하려면 이미 안정 궤도에 올라 있는 생태계의 개선 작업을 가속화해 신기술 생태계의 장점을 희석시켜야 합니다. 실제 데스크톱 저장 시스템은 클라우드 기술에 맞서 빠른 인터페이스와 견고한 구성 요소 등을 앞세워 한동안 시장에서 나름 기반을 유지했으나, 클라우드 애플리케이션의 개선 속도가 빨라지면서 최근들어 사업 기회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결국, 클라우드의 기술 대체 속도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타이밍, 즉, 신기술의 대체 속도를 예측하려면 신기술의 생태계가 초기 난관을 얼마나 빨리 극복할 수 있는지, 그리고 기준 기술 생태계의 발전 및 확장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파악하면 됩니다. 론 애드너 교수 등은 이런 관점을 토대로 기술 대체 속도를 분석하는 프레임워크를 개발했습니다. 신기술의 타이밍을 예측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독창성이 높은 연구 업적이라고 판단됩니다. 현업에서 유용하게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그래프상 1사 분면에 있는 창조적 파괴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1사 분면은 신기술의 등장에 따른 생태계의 초기 난관이 적어서 쉽게 확산이 가능하면서, 동시에 기존 기술을 둘러싼 생태계의 확장기회 역시 적을 때를 뜻합니다. 이럴 때 신기술은 빠른 시간 안에 시장을 장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사분면은 창조적 파괴의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도트 프린터가 잉크젯 프린터로 빠르게 대체된 것이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잉크젯은 기존 프린터와 같은 방식으로 구동되기 때문에 생태계 차원의 난관이 거의 없었고, 기존 기술인 도트 프린터의 생태계 확장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빠르게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신기술 생태계의 초기 난관이 크고, 기존 기술 생태계의 확장 가능성이 높은 경우도 있습니다. 4사분면에 해당하는 ‘강력한 회복 탄력성’ 구간입니다. 이 경우에는 기술의 대체 속도가 매우 느리기 때문에 기존 기술이 오랫동안 시장 리더의 자리를 유지할 가능성이 큽니다. 앞서 말씀드린 RFID와 바코드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전기차와 휘발유차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전기차가 상용화하려면 충전소와 정비 네트워크 등 생태계 차원에서 큰 변화가 필요합니다. 동시에 기존 휘발류차도 연비 개선을 지속하고 있어 전기차가 주류 시장으로 떠오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한편 활발한 공존 구간도 2사분면에 있습니다. 신기술에 얽힌 생태계의 초기 난관이 적은 반면 기존 기술의 생태계를 둘러싼 확장의 기회는 클 때 경쟁은 뜨겁게 달아오르기 마련입니다. 신기술이 시장으로 밀고 들어오지만, 생태계의 발전으로 기존 기술도 시장점유율을 지켜낼 때 장기간의 ‘공존’ 시기가 이어집니다. 하이브리드 엔진과 내연기관 엔진, 클라우드 컴퓨팅과 데스크톱 컴퓨팅의 예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마지막으로 3사분면에 있는 ‘회복 탄력성에 대한 착각’ 영역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영역은 신기술과 관련된 생태계의 초기 난관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기존 기술을 둘러싼 생태계의 확장 기회 역시 적을 때입니다. 신기술의 초기 난관이 해결되기 전까진 별로 달라질 게 없습니다. 하지만 난관을 해결하면 대체 속도는 매우 빠르게 나타납니다. HDTV 대 전통적인 TV, 전자책 대 인쇄책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 두 가지 혁명이 늦어진 이유는 기존 기술의 생태계가 발전해서가 아니라 신기술의 생태계 상 발생한 초기 난관이 매우 높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실상 기존 기술이 높은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는 것은 기술 발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신기술을 무기로 등장한 경쟁자들이 실패를 거듭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기술 경쟁자가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면 신속한 기술 전환이 일어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같은 분석에서 우리는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요. 먼저 각 기업은 스스로가 어떤 사분면에 속해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기존 기술은 정체돼 있지만 신기술이 별다른 구애를 받지 창조적 파괴 구간에 속해있다면 혁신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신기술에 투자를 해야 합니다. 기존 기업들은 창조적 파괴가 몰고 오는 돌풍을 견뎌내기 위해 변화를 수용하기 위한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합니다. 물론 휴대전화로 시장표준이 대체됐지만 응급서비스 분야에선 여전히 활용도가 높은 삐삐처럼 기존 기술로도 장기간 살아남을 틈새시장을 찾는 전략도 모색해볼 수 있습니다. 활발한 공존을 뜻하는 2사분면에서는 기존 기업들이 기존 기술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동시에 생태계를 개선하는데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습니다. 얼리어답터와 잠재 고객군을 상대로 제품과 서비스를 테스트하고 더 완성도 있게 다듬는 작업도 할 수 있습니다. 한편 회복탄력성에 대한 착각 구간의 경우에는 기술이 아닌 생태계 때문에 도입이 늦어지는 상황에서 기술 개발만 운운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기존 기업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기술의 장점 덕분에 현재의 시장 지위를 유지한다는 착각을 경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4사분면에서는 기존 기업들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고 도전자들이 넘어야하는 기준을 높이는데 적극 투자해야 합니다. 연구자들은 ‘때를 잘못 만난 좋은 기술’ 신드롬은 모든 혁신기업들에 악몽과 같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더 나은 타이밍을 찾는 기술은 결과적으로 생존과 성공을 위한 혁신 활동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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