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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정부의 외교정책 방법론에서 배워야 할 점은?
2017-05-15 | 장재웅 에디터

안녕하십니까, 장재웅입니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 가장 큰 리스크는 무엇일까요. 지난 2014년 6월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영자들은 의외로 지정학적 리스크를 가장 심각한 위기로 꼽았습니다. 사이버 공격이나 금융시장 붕괴, 심지어 디플레이션 등 경제 관련 이슈보다도 지정학적 리스크를 더 크고 심각한 위협으로 여기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정학적 리스크는 최근 들어 더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영국의 브렉시트나 중국의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 IS의 무파별 테러,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등으로 전세계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한국은 지정학적 위험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만큼 한국 기업들은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해 보다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국제관계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존 치프먼 영국 ‘국제전략연구소’ 소장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를 통해 이제 기업들도 국가처럼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외교문제를 풀기 위해 외교관들이 펼쳐왔던 다양한 방법론과 솔루션들을 기업들도 도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업이 정부의 외교정책 방법론에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우선, 정부의 외교정책 수립 프로세스부터 배워야 합니다. 정부의 외교정책 수립은 이해관계 정의, 정보 수집과 분석, 지역 또는 경제권 수준의 동맹관계 탐색, 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환경 조성의 과정을 거칩니다. 기업 역시 앞으로는 이런 방식을 활용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가야 합니다. 21세기 기업은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기업은 앞으로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 때 지정학적 리스크 분석을 필수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먼저, 초국가적 리스크를 분석해야 합니다. 국가를 넘어서는 수준의 위협 요인이 자주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르웨이의 석유기업인 스타토일은 영국의 BP,알제리 국영 석유회사 소나트라크와 함께 알제리에 천연가스 생산시설을 운영했습니다. 그러나 2013년 1월 이곳에서 벌어진 테러로 인해 10개국 노동자 40명이 목숨을 잃게 됩니다. 노르웨이 정보국의 조사 결과 알카에다가 테러를 주도했는데, 말리 내전에 개입한 프랑스에 대한 보복으로 리비아 남서부에서 작전을 개시해 알제리에서 테러를 벌였다고 합니다. 즉, 알제리 한 국가에 대한 지정학적 위험 분석만으로는 이런 식의 초국가적 테러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교훈을 얻은 스타토일은 국가 수준과, 초국가 수준의 위협 요인을 모두 파악한 다음 이들을 조합해서 여러 가능성을 가정해 결과를 예측하는 방식으로 지정학적 리스크를 분석하는 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국제관계 전문가를 이사회에 초청해서 조언을 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초국가적 분석도 필요하지만, 국가 내 특정 지역의 위험을 구분하는 역량도 필요합니다. 쿠르드자치정부가 관할하는 이라크 북부는 상대적으로 정치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으므로 원유개발회사들이 기꺼이 투자하는 지역입니다. 인도네시아는 발리 폭탄테러 등 테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지역이지만 비교적 안전한 항구도시인 수라바야에 취항하는 해운회사들은 여전히 활발하게 영업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같은 국가라도 지역마다 정치적 위험이 굉장히 다릅니다. 실제 멕시코 시나올라주는 전 세계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지만, 치아파스 주의 경우 하와이와 비슷한 수준높은 인적자원과 안전도를 자랑한다고 합니다. 지역별로도 치밀한 리스크 분석이 필요합니다. 자국과 인접국가의 상황을 무시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브라질 광산업체 발레는 아프리카 모잠비크에 투자해 큰 성공을 거둡니다. 사전에 충분한 조사와 분석을 통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기 때문이죠. 그런데 오히려 인접 국가인 아르헨티나에서는 실패를 맞보기도 했습니다. 2011년 멘도사 주 서쪽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환율 규제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콜로라도강 인근 광산시설에 소요되는 비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2013년 사업 철회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지정학적 리스크 분석이 단순히 투자 결정 이전에만 효과적인 것은 아닙니다. 기업의 명성은 특정 국가에서의 성공이나 실패가 만들어 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때문에 기업은 투자 결정 이후에도 시장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확인하고, 기업 목표 지지세력과 비판세력을 모두 이해한 다음, 각 이해관계자와 효과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전략을 개발해야 합니다. 다음에서 효과적인 기업 외교 전략 수립의 네가지 원칙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다국적 기업은 독자적인 국제정책을 개발해야 합니다. 해당 기업이 속한 정부 정책과 같은 국제정책을 활용하다가는 난관에 봉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국의 외교정책을 수정하려하면 너무나도 큰 노력이 들어갑니다. 때문에 독자적인 국제정책이 필요합니다. 화웨이의 미국 통신장비 시장 진출이 좋은 예입니다. 화웨이는 최근 미국 통신장비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지만 미국 연방정부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화웨이의 창업자인 런정페이가 인민해방군 출신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화웨이가 미국 통신장비를 통해 중국 보안당국으로 미국의 기밀을 유출할 것이라는 우려까지 제기됐습니다. 이에 화웨이는 최근 전략을 바꿔 주정부와 미 전역의 중소도시에 기반을 둔 소규모 통신사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정보로부터의 자율성을 강조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좀처럼 인터뷰를 하지 않는 런정페이가 직접 인민해방군의 최전선을 수호하는 기업으로 각인된 점을 위식하며 “우리의 목표는 화웨이를 유럽 기업으로 인식시키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 그 방증입니다. 말 자체는 다소 과장된 점이 없지 않지만 기업은 정부의 공식적 외교정책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질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명쾌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또 가능하다면 어떤 국가에 속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보다는 초국가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게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됩니다. 한국 기업들도 과거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피하기 위해 한국 국적임을 숨기기도 했죠. 뿌리를 밝히지 않는 전략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첫째로, 특정 국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전략이 오히려 효과를 발휘하기도 합니다. 일본 기업의 아프리카와 남미 진출 성공요인 중 하나는 노동 착취로 악명 높은 중국 기업과의 차별성을 부각시켰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어느 곳에도 납세의 의무를 질 필요가 없다고 느낄 정도로 무국적기업이 돼서는 안 됩니다. 정당하게 부과되는 법인세 납부 거부는 기업의 명성에 흠집을 내어 국제정책의 실패로 이어집니다. 최근 미국 정부가 조세 회피 목적의 법인 해외이전에 강력한 법적 제재를 가하기로 한 사례처럼 말이죠. 정치적 관례를 다양화하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단순히 해당 정부와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자와 좋은 관계를 맺는 장기적 접근이 중요합니다. 스페인 석유회사 렙솔이 좋은 사례일 수 있습니다. 렙솔은 지난 1999년 아르헨티나의 YPF를 인수해 렙솔YPF라는 이름으로 아르헨티나에 진출했습니다. 당시 아르헨티나 대통령이었던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과의 친분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대통령이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로 바뀌면서 아르헨티나 정부는 YPF의 국유화를 선언합니다. 렙솔이 키르치네르 대통령 시절 쌓아둔 인맥은 페르난데스 정권에서는 효과가 없어졌습니다. 결국 렙솔은 속수무책으로 YPF를 빼앗기고 맙니다. 특정 이해집단과만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면 오히려 그 관계가 취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마지막으로 파괴적 결정을 내리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2015년 나이지리아 정부는 아프리카 최대 통신사인 MYN에 무려 52억달러의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주소를 등록하지 않은 500만 명의 가입자에게 통신서비스를 중단하라고 명령했는데 MYN이 이 명령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무장단체들의 이동전화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주소를 등록한 사람만 이동전화 서비스를 이용핟록 했는데 MYN은 이런 안보적 이슈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결국 정부로부터 엄청난 보복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정부와 정면으로 맞서는 파괴적 행동은 엄청난 리스크를 수반하기 때문에 반드시 주의가 필요합니다. 독자적인 국제정책을 개발하고, 가능하면 초국가적 이미를 주축하며, 정치적 이해관계를 다양화하면서 파괴적 행동을 하지 않는 것, 기업 국제정책 수립과 관련해 잊지 말아야 할 포인트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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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웅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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