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mium > 전략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고객의 습관은 여든까지 안 간다
2017-06-01 | 장윤정 에디터

안녕하십니까. 장윤정입니다. 디자인씽킹이란 개념을 창안한 경영 거장인 로저 마틴 토론토대 교수가 하버드비즈니스리뷰를 통해 ‘누적우위 이론’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발표했습니다. 고객들은 제품을 고르는 과정에서 정신적 에너지를 쓰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고객의 습관적인 구매를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죠. 누적우위 이론에 따르면 브랜드를 너무나 새롭게 리뉴얼하거나, 과감한 혁신을 추진하면 고객들이 습관성 소비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이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즉 고객들의 습관적 소비가 이어지도록 브랜드 정체성을 비슷하게 유지하고, 익숙한 소비 관행을 지속하도록 마트에서도 똑 같은 곳에 물건을 올려놓는 등 가급적 보수적인 경영을 해야 한다고 누적우위 주창자들은 강조합니다. 하지만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누적우위 이론을 소개하면서 이에 대한 반론도 함께 소개했습니다. 논쟁을 즐기는 서구식 문화를 그대로 반영한 편집자의 결정이라고 생각되는데요, 반론을 제기한 사람은 경영 전략 분야의 스타급 연구자 중 한 명인 컬럼비아대학교의 리타 건터 맥그래스 교수입니다. 그녀도 인간이 습관의 동물이며, 고객의 무의식적 생각이 의사결정 과정을 지배한다는 로저 마틴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산업의 경계가 명확하고, 한번 확보한 우위를 유지하기 쉬운, 즉, 환경변화가 적은 상황에서만 ‘누적우위 이론’이 잘 들어맞는다고 말합니다. 아시다시피 오늘날에는 많은 산업 분야에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산업경계도 갈수록 흐릿해져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경쟁우위를 지킨다하더라도 누군가가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디지털화 해버리거나, 우버나 에어비앤비처럼 제품을 서비스로 만들어버리면 하룻밤 사이에 우위가 뒤집어 진다는 게 맥그래스 교수의 주장입니다. 실제로 애플은 원래 컴퓨터 제조업체였지만 스마트폰 시장을 개척하면서, 모바일 산업은 물론이고, 디지털카메라, 내비게이션, 날씨전문방송, 온라인 게임, 교육 등 수많은 산업들에 파괴적 변화를 유발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고객의 습관 만들기에만 집중하다가 혁신기업에게 한 순간에 생존 기반을 박탈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래플리와 마틴이 지적했듯이 소비자의 습관은 경쟁우위를 유지하는데 강력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환경요소들과 마찬가지로 소비자들의 습관 역시 변할 수 있습니다. 특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하면 습관은 매우 빠르게 변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맥그래스 교수는 2012년 런칭한 달러세이브클럽닷컴의 예를 들었습니다. 이 서비스는 굉장히 단순합니다. 저렴한 가입비만 내면 불필요한 거품을 뺀 품질 좋은 면도날을 알아서 집으로 배달해주는 것입니다. 귀찮게 가게에 직접 가지 않아도 되고, 어렵게 시간을 내서 가게에 갔는데 하필 면도날이 동이 나서 헛걸음을 해야 하는 문제도 원천적으로 없앨 수 있었습니다. 2010년 P&G의 질레트는 세계 면도기·면도날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충성고객을 거느렸으며 고객들은 습관적으로 질레트 면도날을 구매했습니다. 강력한 누적우위가 존재하는 대표적인 사례였던 셈이었죠. 하지만 누적우위만으로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배달’을 앞세운 달러셰이브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질레트의 면도날 사업도 변곡점을 맞았습니다. 5년 만에 P&G의 점유율은 70%대에서 59%로 떨어졌고 P&G는 부랴부랴 ‘질레트 셰이브클럽’을 시작했습니다. 유사한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죠. 이렇듯 P&G처럼 잘 나가는 대기업도 불의의 일격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적우위를 구축하고 습관의 힘을 활용해 경쟁우위를 확보하려는 노력과, 습관적 행동에는 반하는 새롭고 혁신적인 시도 사이에서 경영자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맥그래스 교수는 이와 관련해서 실용적인 전략 대안을 제시합니다. 조직의 핵심기술이나 역량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모기업의 핵심기술을 활용해 흥미로운 변신에 성공한 예로는 끊임없이 디지털화를 추구한 노르웨이 신문사 십스테드를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전통적인 종이 신문을 발행하는 회사였습니다. 그런데 디지털화로 광고시장이 잠식되는 위기를 경험했는데요, 이 회사는 오히려 이런 위기를 기회로 여겼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일찌감치 광고주들에게 디지털 광고를 내달라고 호소하며 디지털 광고 사업을 확대하는데 주력했습니다. 오랫동안 광고주들과 맺어온 깊은 유대관계 등을 활용한 십스테드는 온라인 광고 제공업체로 성공적으로 변신할 수 있었습니다. 맥그래스 교수가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년간의 순이익 자료를 분석한 결과, 시가총액이 10억 달러가 넘는 상장기업 2347개 중 단 10개 기업만이 10년 동안 매년 순이익을 5%이상 늘리는데 성공했습니다. 굉장히 어렵지만 일부 기업들은 대대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오랜 기간 이익 증가를 이어왔습니다. 이런 기업들은 리더십, 기업문화 같은 안정적인 요소와 신속한 실험, 인적자원의 이동과 같은 역동적인 요소가 잘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맥그래스 교수는 제품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해보면, 누적우위와 새로운 습관 창출 사이의 딜레마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경영학계의 거장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교수는 우리가 제품을 사는 것은, 그 제품이 우리를 위해 특정한 ‘일’을 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는데요, 고객을 위해 우리가 만드는 제품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지 고민해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품들은 꾸준히 진화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하는 일 자체는 놀랍게도 유사한 사례가 대단히 많습니다. 예를 들어, 역사 속에 등장하는 봉화, 그리고 전보와 전화, 그리고 오늘날의 최첨단 통신기술은 근본적으로 하는 일이 같습니다. 즉, 타인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죠. 결국 제품이 하는 ‘일’ 그 자체에 집중한다면 경쟁자들보다 한발 앞서 더 나은 방법을 고안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객들 입장에서는 언제라도 주어진 일을 더 잘 수행하는 다른 해결책을 쉽게 고용할 수 있다는 점을 기업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맥그래스 교수는 강조합니다. 로저 마틴 교수의 누적우위 개념에 대한 리타 맥그래스 교수의 반론을 소개해드렸는데요, 두 관점은 상충하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측면을 갖고 있어서 실무에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많은 경영학 이론들은 고객들의 습관이라는 강력한 구매 동인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누적우위 이론의 교훈대로 소비자들이 손쉽게 제품을 구매하고 이용해서 습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구매 및 사용 편의를 강화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생존이 보장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더 쉽고 편안하게 고객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혁신 모델이 등장하면 고객들은 새로운 습관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고객은 언제라도 배신할 수 있죠. 기존 주력제품의 누적우위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는 동시에 새로운 습관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는지 탐구하는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감사합니다.

내용 모두 펼치기
HBR Premium은 유료 서비스입니다.
10인의 디렉터가 쉽게 설명해주는 HBR Premium!
HBR Premium을 구독하고 디지털 서비스까지 이용하세요!
프리미엄신청
장윤정 동아일보 기자
관련 아티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