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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이 바꾼 지역사회의료
2015-10-14 | 고승연 에디터

안녕하세요, 고승연입니다. 미국은 훌륭한 의료진과 최첨단 의학과 약학에도 불구하고 ‘아프면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다른 선진국 대부분에서 채택하고 있는 공공의료보험 제도가 아닌 사적 보험 제도에 기반해 있기 때문인데요,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어려워진 이유가 의료보험 제도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글로벌 최고 기업 중 하나로 꼽히는 인텔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2009년 인텔 역시 치솟는 보건의료 비용 문제에 직면합니다. 2012년이 되면 10억 달러에 육박할 것이 확실해 보였고,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봤습니다. 그럼에도 의료 서비스 비용의 지속적인 상승이라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직원들에게 더 많은 비용을 부담시키면, 좋은 인재를 지속적으로 고용하기가 어려운 문제도 생깁니다. 이때 인텔은 아주 재미있고 획기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버드비즈니스 리뷰 7·8월 합본호에 실린 ‘공공의료 서비스 개혁, 기업이 주도했다?’라는 기사 속으로 한 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자 인텔은 세계 최고의 기업입니다. 생산현장에서 다양한 장비와 부품 공급자를 상대로 품질과 비용, 안정성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관리합니다. 그런데 의료공급자한테는 왜 이걸 못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말 그대로 발상의 전환입니다. 인텔은 시애틀의 버지니아 메이슨 메디컬 센터 사례에서 구체적 혁신 방안을 찾아냅니다. ‘보건의료 시스템 표준화’에 성공한 이 센터는 도요타의 생산방식을 도입해 최적화된, 즉 가치창출에 도움이 안 되는 절차와 환자 진료를 늦추거나 기다리게 만드는 과정을 모두 없앤 린 생산방식의 진료과정을 구축했습니다. 대도시인 포틀랜드에서 보건의료 협력기구를 구성하는 방안을 제시합니다. 보건의료시장 협력기구 HMC(Healthcare Marketplace Collaborative)가 탄생합니다. ‘고용주’로서의 기업, 여기에선 인텔이겠지요, 그리고 의료 서비스 제공자, 의료보험회사, 의료인 대표들이 이 협력기구에 참여하게 됩니다. 막대한 구매력을 가진 기업이 자신의 힘을 활용해 스스로의 비용을 줄이는 한편, 포틀랜드 시 전반의 의료제도 개선의 단초를 만들기 시작한 겁니다. 그럼 인텔이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한 번 보겠습니다. 우선 시험적인 성격의 기구다 보니 특히 인텔 직원들이 많이 겪는 질환을 중심으로 6개의 임상 진료과정에 집중하게 됩니다. 5년간의 실험 결과, 당뇨, 고혈압 등을 비롯한 몇몇 질병의 치료비용이 각각 24%에서 49%까지 줄어듭니다. 비용 증가 속도를 늦추기만 해도 중요한 업적을 달성한 것으로 여기는 보건의료업계에서는 엄청난 성과죠. 또 불필요한 진료를 없애는 ‘근거 중심 진료’를 강조하면서 환자 경험을 향상시키고 업무처리 과정에서 낭비되는 시간을 1만 시간 이상 줄였습니다. 이를 현재의 미국 보건의료시스템 안에서 다 이뤄낸 겁니다. 좀 이해하기 쉬우시라고 인텔 직원들이 많이 겪던 질환인 허리 통증 치료 사례를 한 번 보겠습니다. 전통적인 치료 과정은 의사 중심으로 진료가 진행되고 의료 서비스 제공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진행과정은 다 다릅니다. 표준화가 안 돼 있는 거지요. 환자는 의사들을 수차례 걸쳐 방문하는 고통을 겪어야 하고 치료가 시작되기 전에 의료적인 검사들을 다 받아야 합니다. 평균 치료기간은 52일이나 걸립니다. 그런데, HMC에서 만들어낸 치료 과정, ‘근거에 기준을 두는 과정’으로 바꾸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1차 진료의사를 만나고 검사를 받고 다시 전문의를 만나는 복잡한 상황이 안 벌어지는 겁니다. 전화로 먼저 검진 예약을 하고 재활치료소에서 보조요원을 통해 물리치료를 먼저 받습니다. 여기까지 딱 하루 걸립니다. 그리고 20여 일간의 물리치료를 통해 환자를 더 진단한 뒤 상황에 따라 의사를 만나거나 아니면 치료를 완료합니다. 평균 치료기간은 22일로 줄어듭니다. 시간과 비용의 절약, 환자의 만족도 모두 엄청나게 상승합니다. 저자들은 인텔의 성공 요인을 8가지로 정리합니다. 이 자리에서 다 설명하기는 어려운 관계로, 몇 가지 핵심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참여하는 각 주체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명백하게 했다는 점입니다. 인텔은 직원과 그 가족으로 구성된 거대한 소비자 기반을 제공했고요, 공급자 관리 분야의 전문성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의료 서비스 제공자들은 표준화된 의료 서비스 과정의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의료보험회사는 보험청구 관련 데이터를 제공하고 분석했고요, 의료인 대표는 가장 중요한 ‘의료 지식’을 제공했습니다. 할 일과 기여할 부분이 명확하니 다들 충돌 없이 움직인 거지요. 저자들은 또 HMC 각 참여자들이 공동 목표를 수립했던 것 역시 주효했다고 봅니다. 정보 공유와 의견 교류를 자유롭게 하면서 ‘환자를 포함한 이해당사자 모두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는 목표’를 만들고 거기에 집중했다는 겁니다. 그 밖에도 적절한 벤치마킹, 탄력적 운영, 단순한 측정 기준 도입 등도 성공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는 인텔의 HMC 성공사례로부터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요? 막대한 구매력을 가진, 엄청난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진 대기업이 스스로의 비용 절감과 장기적 이익을 위해서 사회적인 기여를 하는 것. 요새 많이 유행하는 CSR, CSV라는 단어들. 여러분은 인텔의 의료 서비스 개혁에서 혹시 이런 게 떠오르지 않으셨는지요? 학자들이 말하는 정확한 개념에 딱 떨어지진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큰 기업들이 스스로의 이익과 사회 개혁의 어젠다를 일치시켜가는 일은 이렇게 가능하다는 게 가장 큰 교훈입니다. 한국 사회가 처한 많은 문제, 예를 들어 교육문제나 노인문제, 소득불평등 문제를 삼성이나 현대가 나서서, 자신들의 채용이나 인재관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들과 위원회를 꾸리고 개혁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그걸 지역사회부터 시작하는 것. 분명 가능한 일일 겁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공유가치창출이 그리 추상적이고 어려운 일 만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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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연 -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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