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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터들은 왜 자꾸 회사를 옮길까
2017-10-26 | 김남국 에디터

안녕하세요, 김남국입니다. 매년 마케팅 원론 과목의 기말시험 문제로 ‘마케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하라고 했던 한 대학 교수님 이야기 들어보신 분 많으실 겁니다. 매년 이 문제 하나만을 낸다고 선배들에게 들어왔기 때문에 당연히 이번 학기에도 같은 문제를 낼 거라고 학생들이 생각하고 준비를 했는데, 이 교수님이 칠판에 시험문제 첫 글자로 ‘마’자가 아니라 ‘도’자를 쓰자 학생들이 크게 당황했습니다. 문제가 바뀐 줄 알고 혼란에 빠진거죠, 하지만 이내 안정을 찾았다고 합니다. 출제된 시험문제가 ‘도대체 마케팅이란 무엇인가’였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마케팅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메시지도 담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실제 기업에서도 마케팅 담당자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규정이 애매한 경우가 많다 보니 심각한 갈등이 자주 일어납니다. 미국 기업의 최고위급 간부, 즉 C레벨 경영자 가운데 최고마케팅책임자, 즉 CMO의 임기가 4.1년으로 가장 짧았다고 합니다. 참고로 CEO의 평균 재직기간은 8년, CFO는 5.1년, CHRO는 5년입니다. 또 CEO의 80%는 CMO를 믿지 못하거나 불만스럽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대부분 CEO와 CMO가 갈등 관계라는 걸 보여줍니다. 마케팅계의 석학으로 꼽히는 닐 모건 미국 켈리비즈니스스쿨 교수와 킴벌리 휘틀러 버지니아대 교수는 왜 유독 CMO를 둘러싼 불협화음이 생기는지 원인을 찾기 위해 무려 8년간 수행한 연구 결과를 HBR에 공개했습니다. 연구팀은 무엇보다 직무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즉, CMO에게 대단히 모호하고 광범위한 직무를 부여하기 때문에 상당수 CEO들이 권한은 없고 책임만 주어져 본질적으로 업무를 잘 수행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설명입니다. 갈등을 줄이고 기업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CMO의 직무를 명확히 정의하는 게 중요하다고 연구팀은 강조합니다. CMO는 크게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됩니다. 첫째는 전략형 CMO입니다. 이런 유형의 CMO는 회사 내 다양한 브랜드들이 일관된 포지셔닝 전략을 기획합니다. 다양한 데이터와 시장조사 자료를 토대로 혁신적 제품을 기획하거나, 고객 경험 관리 방침을 수립합니다. 전체 CMO 31%정도가 전략형 CMO라고 합니다. 두 번째 유형은 상품화에 집중하는 CMO입니다. 이들은 이미 다른 부서에서 기획과 생산을 끝낸 상품을 판촉하는 활동에 주력하는 겁니다. 이들은 광고를 제작하거나, 온 오프라인 채널을 통한 판촉활동을 책임집니다. 46%의 CMO가 이런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세 번째 유형은 앞선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수행하는 전사 총괄형 CMO입니다. 전체적인 브랜드 관리에서부터 판촉계획 실행에 이르기까지 가장 광범위한 업무를 수행합니다. 단일 브랜드 기업에서 이런 전사 총괄형 CMO가 많습니다. 전체 CMO의 23%가 이런 유형입니다. 가전이나 화장품 같은 소비재 기업처럼 소비자의 욕구를 이해하는 게 무척 중요한 산업이라면 당연히 전략형이나 총괄형 CMO가 바람직할 것입니다. 반대로 기술개발이나 제조가 중요한 헬스케어나 중공업 B2B산업이라면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판촉하는 상품화 CMO가 적합할 것입니다. 성장이 느리고 경쟁이 치열한 경우엔 전략형이나 전사총괄형이, 급성장하고 있는 시장이라면 상품화 CMO가 바람직합니다. 이렇게 회사의 특징에 맞게 CMO의 직무를 정의했다면, 여기에 맞는 역할과 권한, 책임을 부여해야 합니다. 하지만 CMO를 채용할 때에는 전사차원의 손익관리까지 맡길 것처럼 말했다가 막상 채용을 해놓고는 전략 수립 과정에 일절 개입하지 못하게 해서 손익관리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기업이 많다고 합니다. 특히 CMO의 성과 지표와 기대 수준이 불분명한 기업도 많습니다. 상품화 CMO는 특정 제품에 대한 판매량이나 고객들의 반응 등이 성과 지표가 될 것입니다. 반면 전략형이나 전사형 CMO는 기업 전체의 손익 지표 등이 주요 성과 지표가 될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신현상 한양대 교수는 한국의 대표적인 CMO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많은 한국기업들이 패스트 팔로어, 즉 재빠른 추격자 전략을 사용했기 때문에 CMO의 역할은 대체로 상품화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지적합니다. 과거엔 좋은 광고 에이전시를 만나 광고만 성공시켜도 훌륭한 CMO로 평가받았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제 달라져야 합니다. 패스트팔로어 전략만으로 성장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인데다 인공지능, 머신러닝, 빅데이터 등 새로운 기술들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 기반의 마이크로 타깃팅 등 새로운 디지털 마케팅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마케팅과 관련해 HBR에 소개된 영화관 업체 리걸엔터테인먼트 사례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이 회사는 새로 CMO를 영입할 때 CIO, 즉 최고정보기술책임자와 협업이 가능한지 여부를 매우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기술을 잘 이해하고 있는 공학도 출신을 CMO로 영입했습니다. 또 CMO와 CIO에게 지급하는 보너스를 두 사람이 반드시 협업해야 달성할 수 있는 목표와 연동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모바일 앱으로 판매된 티켓 비율, 무인판매기 이용 비율, 웹사이트 발권 시간 등 두 사람이 반드시 협력해야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제시한 것이죠. 결국 CIO와 CMO는 주2회 회의를 하며 협력방안을 모색했고 온라인 예매 비율과 고객만족도, 회원수 등이 획기적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마케팅을 규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사 특성에 맞는 CMO의 역할과 책임, 성과 기준 등을 규정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특히 리걸엔터테인먼트 사례처럼 환경 변화에 맞춰 적절한 성과 지표를 만들고 기술 부서등과 협업을 유도하는 것,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반드시 고려할 필요가 있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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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 -Harvard Business Review Korea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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