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데이터의 중요성도 다시 한번 강조되고 있습니다. 거대 스타트업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은 자신이 보유한 데이터를 토대로 새로운 서비스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데이터는 산업혁명 시대의 원유와도 같다는 말이 실감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정말 데이터가 모든 혁신의 원천일까요? 과학적 사고가 경영학의 전부일까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바로 토론토 로트먼 경영대학원 로저 마틴 교수입니다. 그는 디자인씽킹이란 개념을 만든 장본인으로 경영계의 거장급 사상가 중 한 명입니다. 로저 마틴 교수는 글로벌 컨설팅 그룹인 액센추어에 흡수된 호주 유명 컨설팅 업체 세컨드 로드(Second Road) 창립자인 토니 골스비 스미스와 함께 하버드비즈니스리뷰를 기고문을 통해 데이터는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근거가 될 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선 과학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장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대표적입니다. 잡스는 사람들의 습관을 완전히 바꿔놓았을 정도로 엄청난 혁신을 이뤘습니다. 그런데 이런 혁신은 데이터를 분석해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과거의 데이터에 기반 하지 않고 과거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제품이나 과정을 상상해내는 능력에서 나왔습니다. 자동차나, 철도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자, 그럼 우리가 어떻게 데이터에서 얻을 수 없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전에 없던 새로운 방식으로 제품을 만들어내고 경영 환경을 바꿀 수 있는지 살펴볼까요? 처음 우리가 살펴볼 것은, 변화 가능한 요소와 불가능한 요소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어떤 제품이나 프로세스가 실제로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 살펴보는 거죠. 경영진은 모든 의사 결정 상황을 ‘변화 불가능’과 ‘변화 가능’의 상태로 해체한 뒤 논리를 테스트 해봐야 합니다. 데이터 그 자체만으로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실제로 가장 수익성이 좋은 비즈니스는 기존 데이터의 결과를 반박하고 의심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레고의 예를 들어볼까요? 2008년 레고가 조사한 데이터에 따르면 여자 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 블록 장남감에 대한 관심이 훨씬 적었습니다. 블록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85%가 남자아이였습니다. 결국 회사는 여자아이들이 레고 장남감을 덜 좋아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죠. 하지만 당시 CEO였던 크누스토르프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여자아이들도 블록 장난감에 대한 관심이 충분히 있지만 그 관심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죠. 그는 데이터 결과를 의심하고 ‘여자아이들도 충분히 레고를 즐기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며 제품 연구에 돌입합니다. 데이터가 증거 이상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없고, 현상을 명확히 진단하는 증거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기 위해선 먼저 기존 사고의 틀을 깨뜨려야 합니다. 현재 상황이 거의 유일한 가능성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새로운 해결책이 보이는 거죠. 다시 레고 사례로 돌아가 보죠. 레고의 크누스토르프가 성별에 대한 의구심을 품은 후 4년 동안 민족지학적인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 여자아이들이 블록 놀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남자아이들과 좋아하는 놀이의 형태가 달라졌던 거죠. 여자아이들이 협동적인 활동을 좋아하는 성향이 두드러진 만큼 이를 반영한 집짓기 장남감 등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레고는 2012년 레고 ‘프렌즈라인’을 출시해 여자아이들도 즐기는 벽돌 장남감을 만들어냈습니다. 기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입증해 시장을 확대한 셈입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아이디어가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실현 가능한지 여부를 판단해봐야 하는데요. 과거 데이터로는 검증이 안 되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한지 검증하기 참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좌절하긴 이릅니다. 몇 가지 원칙만 지키면 오히려 문제가 쉽게 풀릴 수도 있습니다. 한 유명 사무용 가구 회사는 어느 경쟁사보다 뛰어난 의자를 만들었습니다. 가격이 일반 사무용 의자의 2배에 달했죠. 기존 시장에서는 이 의자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회사는 시장을 포기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이 이 의자에 관심을 보일지 고민했습니다. 고객들이 실제로 의자를 경험해 본다면 분명히 시장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회사는 고객들이 체험해볼 수 있도록 집중적인 마케팅을 했고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기존 데이터로는 미래 가능성의 세계를 예측하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새로운 데이터를 만들어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수정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를 ‘프로토타이핑’이라고 하는데요, 시제품을 만들고 이에 고객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피는 것입니다. 정교한 데이터 분석, 빅데이터의 활용은 빠르게 시장을 이해하고 대처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과학을 활용하면, 상황이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무심코 지나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놓친 혁신의 단서를 경쟁사가 실행에 옮기고 제품으로 내놓은 순간, 그리고 고객들이 그 새로운 제품에 설득당하는 순간, 때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