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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다리 두드리는 경영, MUJI의 해외 진출 30년 이야기
2018-03-30 | 조진서 에디터

무지(MUJI), 혹은 무인양품이라 불리는 생활용품 브랜드가 있습니다. 일본에 본사가 있고 한국에도 2003년부터 영업을 해왔습니다. 군더더기 없고, 어디에도 어울릴 수 있는 깔끔하고 심플한, 그러면서도 품질은 중상급인 제품을 팝니다. 예를 들어 좋은 이집트산 면으로 만든 파스텔풍의 단색 침대 시트라든가, 아무런 무늬나 브랜드 표시가 없는 셔츠, 또 벽에 걸게 되어있는 흰색 CD플레이어 같은 것이죠. 젊은 감성에 맞고 여성적이기도 한 브랜드인데요. 자 이제 무지의 사장님 사진을 한 번 보시죠. 가나이 마사아키 회장님이십니다. 어떠세요? 생각한 것과는 좀 다른 인상이죠? 옷을 깔끔하게 입고 계시긴 하지만 전반적인 인상은 대기업 임원 같습니다. 힙한 디자이너 브랜드의 오너 같지는 않죠. 실제로 이 분은 디자이너 출신 오너가 아닙니다. 무지라는 브랜드는 어떤 멋쟁이 디자이너가 창업한 게 아닙니다. 일본의 거대 유통기업인 사이손 그룹이 만들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이손 그룹의 자회사인 세이유백화점에서 1980년도에 만들었습 니다. 한국으로 치면 신세계나 롯데백화점에서 만든 서브브랜드였는데, 이젠 어엿한 글로벌 기업이 된 거죠. 가나이 회장님은 1976년 세이유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40년 넘게 근무하고 있습니다. 무지라는 브랜드의 성장 스토리도 아주 일본적입니다. 보시죠. 첫 시작은 1980년이었습니다. 과한 장식이나 디자인 없이, 예쁘면서도 가격 부담 없는, 모든 일본 소비자들이 필요로 할 만한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자는 것이 당시 세이유의 사업 아이디어였습니다. 무인양품이라는 이름 자체가 ‘브랜드 없는 질 좋은 상품’이란 뜻입니다. 약 10년간은 일본 내에서만 영업을 했습니다. 일본 내수경제 호황기였기 때문에 외국에 나갈 필요성도 못 느꼈을 겁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후반에 런던에서 열린 일본 제품 전시회에 참석해서 영국 바이어들의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화려하기로 소문난 헤롯 백화점에서 합작 제안을 받았습니다. 거절했습니다. 헤롯의 이미지가 무지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 해서요. 그 다음에는 해롯 옆에 있는 리버티 백화점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디자인 예쁜 제품이 많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무지는 리버티에 매장을 냈습니다. 1989년의 일입니다. 2년 후인 1991년에는 런던의 비싼 쇼핑가인 리젠트 스트릿에 단독 매장을 냈습니다. 일본식의 간결한 디자인이 굉장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해외시장에서 좋은 반응이 오면 기업은 신속하게 확장을 추진하기 마련인데요, 세이유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했습니다. 역량도 부족한데 섣부르게 확장했다가 브랜드 정체성이 망가지느니, 확장 안 하는 게 낫다는 이유였습니다. 보수적인 조직문화입니다. 무지는 무조건 커맨드 앤 컨트롤, 즉 자신들이 매장을 완전히 콘트롤할 자신이 없다면 확장을 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세웁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일본적이고, 또 무지의 디자인과도 잘 어울리는 생각이죠. 리버티 백화점과의 파트너십은 5년 만에 끝내고, 그때부터는 현지 자회사를 통한 경영으로 들어갑니다. 자회사를 세워도 확장에 서두르지는 않았습니다. 한 국가에서 기존 매장들이 모두 수익성 있게 운영되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만 새로운 점포를 냅니다. 최종 선정위원회에는 사장과 회장까지 참석합니다. 그런 식으로 하다보니 2007년 미국 진출 이래 10년 동안 고작 점포를 10개 냈고요, 홍콩과 싱가포르에서는 한때 철수하기도 했습니다. 또 세계 어디를 가도 같은 구매경험을 제공하도록 매장 디자인과 배치, 머천다이징 표준화를 책임지는 부서를 만들었습니다. 현재 7000여가지 제품을 제조하고 판매하는데 국가에 따른 현지화는 잘 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같은 물건을 팝니다. 진열 순서 정도만 바꿀 뿐이죠. 느리지만 꾸준하게 걸어온 무지는 최근 몇 년 동안 확장속도가 조금 빨라졌습니다. 일본 내외 매장 숫자가 각각 400개 정도로 비슷해졌구요. 그래도 매출로 보면 일본시장 비중이 약 65%로 여전히 높습니다. 가나이 사장은 말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사업을 키우는 게 아니다. 무지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끈질기게 탐구하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쓸모 있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라고요. 지나친 상업주의는 피하자고도 합니다. 사실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일수도 있고요, 제가 보기에는 일본 대기업의 평생직장 문화, 보수적 조직문화에서 만드는 생활용품 브랜드로서 택할 수 있었던 최선의 길을 걸어온 게 아닌가 합니다. 너무 조바심내지 않고, 큰 욕심 내지 않으면서 10년 후, 20년 후를 바라보고 브랜드의 정체성을 무엇보다도 우선순위에 두는 경영을 해왔습니다. 패션과 유통업계에는 자라, 유니클로, 또 중국의 미니소처럼 적극적인 투자와 광범위한 해외 확장을 시도하는 브랜드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무지처럼 천천히, 조용히, 꾸준히 키워가는 브랜드도 있습니다. 뭐가 더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요, 최소한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이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변하지 않을 브랜드는 무지 아닐까요? 한국의 전통 대기업과 유통기업들도 참고해볼 만한 전략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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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서 HBR Korea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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