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품 개발을 담당해본 적이 있나요? 혹은 신사업을 추진하는 팀에서 일해본 적이 있나요? 이런 경험을 해보신 분은 아마 ‘적은 내부에 있다’는 말에 동감하실 겁니다. 뭔가 새로운 일을 하려다 보면 조직 내부에서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꼭 나옵니다. 기존에 안정적으로, 편안하게 잘 하고 있는 사업이 있는데 괜히 새로운 일을 벌이며 유난 떨지 말라, 다른 사람들까지 귀찮게 하지 말라는 거부반응이 꼭 나옵니다. 이런 생각이 틀린 것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신제품을 출시했다가 기존 제품의 매출을 갉아먹는 바람에 손해만 보는 일도 발생하니까요. 또 지나치게 빨리 신기술이나 신시장에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2000년대 중후반에 태양광 같은 신재생 에너지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국내 기업들의 사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과 기술이 변화하는 산업에서 경쟁하는 기업은 언젠가는 신제품도 내야하고 신사업도 추진해야 합니다. 바로 그 ‘언제’가 언제인지를 알아내고 이를 조직 내부에서 설득시키는 것이 관건인데요, 이렇게 신사업 타이밍을 잡고 조직 내부를 설득시키는 데 도가 튼 분이 있습니다. 바로 시스코 시스템즈에서 20년째 CEO를 하고 있는 존 체임버스입니다. 시스코는 1984년에 설립돼서 벌써 30년이 넘은 인터넷 통신장비 회사입니다. 이 업계는 워낙 변화의 속도가 빨라서 오래가는 기업이 흔치 않습니다. 컴팩, 선마이크로시스템스, 왕 인스티튜트, 노텔, 알카텔, 루슨트 등 한때 잘 나가던 기업들 대수가 문은 닫거나 경쟁에서 밀려난 상황입니다. 시스코도 처음엔 전화선 모뎀 장비를 만드는 회사였는데요, 앞서 예로 든 기업들과는 달리 시장 환경이 변하기 전에 한걸음 먼저 변하자는 철학을 갖고 고속이더넷, 무선인터넷, 클라우드 컴퓨팅, 그리고 사물인터넷 등으로 사업모델을 성공적으로 바꿔왔습니다. 그래서 2014년 기준 매출이 약 50조원, 순이익이 약 8조원이나 됩니다. 체임버스는 시스코에 오기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회사가 대폭 구조조정되고 쪼그라드는 걸 지켜보면서 변화관리 전문가가 됐다고 합니다. 그가 갖고 있는 신사업 진입의 원칙 세 가지는 이렇습니다. 첫째, 내부 조언보다 고객의 말에 무게를 싣습니다. 조직 내부 의견만으로는 신사업 타이밍을 잡기 힘듭니다. 각자 맡고 있는 업무에 이해관계가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시스코가 고 이더넷 기술에 투자하게 된 계기는 체임버스의 고객사 방문이었습니다. 자동차회사인 포드를 방문했다가 거기서 고속이더넷이 대세가 될 거란 얘기를 처음 들었고, 일주일 후에 보잉사를 방문했는데 거기서도 똑같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일주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듣고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아예 보잉사 클라이언트가 추천해준 고속이더넷분야의 신생기업을 인수해버렸습니다. 둘째, 스타트업 정신을 유지합니다. 시장 변화를 몸으로 느끼기 위해 ICT 산업의 중심지인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또 CEO를 제외한 다른 고위 임원들을 자주 교체합니다. 체임버스 임기 중에 영업책임자는 여섯 번, CFO와 CTO는 다섯 번 교체됐습니다. 새로운 시장에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전문가를 끊임없이 영입합니다. 아마 자기 자신도 회사의 신사업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으면 제 발로 걸어 나갔을 것입니다. 셋째, 구조조정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2014년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 기존 사업부에서 직원을 6500명이나 내보냈습니다. 그대로 있다가 회사가 망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입니다. 대신 내보낸 직원만큼 새로운 분야의 인재를 충원합니다. 결국 2014년 전체적으로 직원 수 변화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임직원을 물갈이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ICT 산업에서 시스코가 30년 이상 살아남고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이와 같습니다. 물론 한국은 미국처럼 노동유연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대규모 해고는 바람직하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체임버스의 경영철학의 핵심은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변화를 추구할 때는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내부의 반발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외부 고객의 관점에서 생각하라는 것. 그리고 위기를 맞기 전에, 잘 나갈 때부터 변화를 도모하라는 것입니다. 2015년 초 삼성그룹은 화학과 방위산업 계열사들을 한화그룹으로 매각했습니다. 이렇게 꾸준히 조직의 변화를 시도하는 한국형 해결책을 찾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