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이방실입니다. 다들 타이타닉호의 비극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타이타닉호 참사를 두고 최근 인지심리학자인 토니 맥카프리가 HBR에 흥미로운 주장을 펼쳤습니다. 조금만 생각을 바꿔 보면, 당시 타이타닉호를 침몰시킨 원인이 됐던 빙산을 오히려 사람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방책으로도 활용할 수 있었을 거라는 주장입니다. 이야기인즉슨 이렇습니다. 타이타닉호 침몰 당시 빙산은 바다 위로 높이 치솟아 있었고 길이도 120미터는 됐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아마 빙산에서 평평한 곳을 찾아 구명보트로 승객들을 실어 나를 수도 있었을 테고, 아예 타이타닉호의 선체를 빙산 가까이 대서 승객들이 그 위로 대피할 수 있게 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거죠. 맥카프리의 주장이 황당무계한 소리로 들리시나요? 꼭 그렇게만 볼 일도 아닙니다. 실제로 빙산을 이용해 사람들의 목숨을 살린 사례가 있었거든요. 1849년 캐나다 동부 세인트로런스만에서 한나호가 침몰한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빙산 위에 대피한 덕택에 170여 명의 승객 중 120여 명이 구조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타이타닉호에서도 빙산을 활용한 구조 방법이 실제 효과를 발휘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발상이고,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이며, 무엇보다 생사기로의 위기 상황에선 한번쯤 도전해 볼만한 아이디어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왜 타이타닉호 승객들이나 승무원들은 이 같은 시도를 해 보지 못했던 걸까요? 맥카프리는 그 원인 중 하나로 Functional fixedness, 즉 기능적 고착을 꼽습니다. 기능적 고착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대상을 그것의 본래적 용도와 쓰임새로만 국한해 보게 만드는 심리적 편향입니다. 이렇게 고정관념에 빠지게 되면, 빙산이 구명보트와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대해선 도저히 상상조차 못하게 되는 거죠. 마치 클립은 종이를 묶을 때만, 동전은 물건을 살 때만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클립을 철사 대신으로, 또 동전을 드라이버 대신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못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능적 고착 현상을 증명한 대표적 실험이 하나 있습니다. 양초를 가지고 한 실험인데요, 성냥갑, 압정 등 주어진 도구를 활용해 코르크 재질의 벽에다 양초를 고정시켜서 실제로 불을 붙였을 때 촛농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는 방법을 찾으라는 겁니다. 실험 당시 대부분 사람들은 압정으로 양초를 벽에 붙이려 한다든지, 촛농을 녹여 양초를 벽에 붙일 접착제로 사용하는 방법을 해결책으로 내놓았지만 결국 다 실패했습니다. 정답은 압정이 담긴 박스에서 압정을 다 쏟아낸 후, 그 박스를 압정으로 벽에 고정시켜 양초 받침대로 쓰는 것이었죠.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박스를 압정을 담는 상자로만 편협하게 인식했기 때문에 해결책을 찾는 데 실패한 거죠. 기능적 고착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맥카프리는 일단 물건을 기술하는 방식부터 바꿔보라고 조언합니다. 즉, 어떤 물건을 봤을 때 그 물건을 하위 부품들로 세분화하고, 각각의 부품에 대해 일반적이고 포괄적으로 총칭해 이야기할 수 있는 말로 설명해 보라는 겁니다. 다시 양초를 가지고 설명해 보죠. 양초는 크게 밀랍과 심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때 심지를 심지라고 부르는 건 불을 붙이는 매개체로서의 용도와 기능에 집중한 설명입니다. 하지만 ‘끈’이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한발 더 나아가 ‘길게 실로 짠 섬유질 가닥’이라고 풀어서 기술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양초 심지는 불을 붙이는 데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물건을 묶는데도 사용할 수 있다고 인식이 바뀔 겁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선 기능적 고착을 극복하는 것 말고도 기존 디자인이 가진 특징에 집착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소위 ‘디자인 고착(design fixation)’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인데요. 사탕 봉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사탕이 가득 담긴 봉지, 특히 지퍼백처럼 개봉 후 다시 밀봉할 수 있는 사탕 봉지를 보여주고서, 그 사탕봉지를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디자인해보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봉지 재질을 바꾼다거나 밑면을 넒혀 보자는 따위의 아이디어만 생각해 냅니다. 하지만 재질이나 모양 외에 다른 측면도 굉장히 많습니다. 예를 들어 봉지에 담는 ‘내용물’을 고민하다보며 사탕 외에 액체나 기체를 담는 용기를 디자인 할 수도 있습니다. 또 ‘감각 자극’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봉지에서 재미나는 소리가 나게 디자인할 수도 있고 봉지 표면에 독특한 질감이 느껴지게 디자인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특정 대상에 대한 다양한 측면들을 가급적 많이 열거하고 새로운 기능을 생각해보면 디자인 고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목표 고착(goal fixedness)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건 목표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와 관련이 큽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에게 “쓰레기통에 뭔가를 ‘접착’시켜 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풀이나 테이프를 활용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만약 ‘접착’이라는 말 대신에 ‘고정’이라는 단어를 쓰면, 즉 “쓰레기통에 뭔가를 ‘고정’시켜 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풀이나 테이프 외에도 클립, 못, 찍찍이 등 훨씬 다양한 해결책들을 생각해 내곤 한다는 거죠. 이처럼 목표 고착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목표를 표현하는 방식에 쓰이는 단어를 좀 더 일반적인 용어로 바꿔 생각의 폭을 넓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어떤 대상에 대해 기술하는 방식만 바꿔도 편협한 고정 관념을 막고 발상의 전환을 이뤄 우리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고, 더 나아가 창의성과 혁신을 이룰 수 있다는 게 맥카프리의 주장입니다. 기능적 고착, 디자인 고착, 목표 고착이 창의성을 방해한다는 점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