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현진 기자입니다. 오늘은 ‘위기의 HR’을 주제로 얘기 나눠보려고 합니다. HR은 회사의 말단 직원부터 CEO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직원들에 영향을 미치는 부서입니다. 하지만 많은 현대 기업, 특히 미국 기업 구성원들은 HR관리자들이 자잘한 행정업무에만 매달린 나머지 비전과 전략적 통찰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사업적 성과에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겁니다. HR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며 <부품사회>라는 책으로도 유명한 미국 와튼스쿨의 피터 카펠리 교수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 7,8월 합본호에 실린 ‘우리는 왜 HR을 미워할까’에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카펠리 교수는 사실 HR의 중요도와 기업 내 비중은 노동 시장 동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기에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어떤 고난도 참아야 했습니다. 당시 관리자들은 노동자들에게 폭언, 폭력까지 가하면서 성과를 내라고 압박할 수 있는데도 인사팀이 개입하는데 대해 불평한거죠. 2001년과 2008년 불황기, 그리고 ‘일자리 없는 회복기’라 불리는 현재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정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반면 호황이라 일손이 부족했던 1920년대와 남자들의 참전으로 노동력이 딸리게 된 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에는 인사팀이 각 부서에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최근 HR의 위기는 일자리가 부족해진 현실과 맞물린 것이라는 게 카펠리 교수의 분석입니다. 이처럼 HR의 ‘끗발’이 부족한 시기에는 기업의 인재 관리 투자비 및 시간도 크게 줄어듭니다. 이럴 때 HR부서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첫째, 의제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현재 맞닥뜨린 문제가 회사에 왜 중요한지 밝히고 그 문제를 합리적으로 다룰 방법이 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CEO나 고위경영진은 대개 HR관련 이슈에 대해 전문성이 없습니다. 이들을 위해 사업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인사 관련 쟁점에 대해 명확한 관점을 제시해야 합니다. 예컨대 채용과정에선 통상 면접 훈련을 전혀 받은 적 없는 각 부서 관리자들이 감에 의존해 면접을 진행합니다. 이는 사람을 잘못 뽑아 비용을 낭비하는데 그치지 않고 때로는 소송의 위험성까지 높입니다. HR담당자들이 사안의 중요성을 충분히 어필하면 관리자들의 생각도 충분히 돌릴 수 있습니다. 둘째, 현재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에 집중해야 합니다. 많은 미국 기업들이 아직도 1950년대에 수립된 인재 관리 전략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런 낡은 전략을 모방하지 말고 자사 또는 해당 업계에 특화된 방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각 회사마다 어떤 것이 가장 큰 이슈인지는 다릅니다. 여기선 10여 전부터 국내기업들도 도입한 강제등급평가제 등의 인사고과 평가 방식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딜로이트컨설팅은 기존 성과관리에 투입되는 시간을 조사한 결과 평가서 작성, 등급 산정 등을 위해 연간 200만 시간에 육박하는 시간을 소비하고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내린 평가등급에 실제 업무 성과가 반영되는 비율은 21%에 그쳤습니다. 등급 평가에 미친 요인의 62%는 평가자의 개인적 특성이었습니다. 이러한 편향을 배제하기 위해 딜로이트는 평가 시스템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기존 등급부여 방식의 평가를 폐지하고 직속 상사인 팀 리더의 의견을 묻기로 했습니다. 먼저 사람들이 타인의 능력을 평가할 때 대개 일관성을 잃고 말지만, 자신의 느낌과 의도에 대해선 일관성을 잘 유지한다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이에 따라 팀원의 성과를 평가하는데 있어 팀 리더에게 ‘앞으로 그 사람에게 취할 행동’을 물었습니다. 즉, ‘성과를 고려할 때, 이 사람의 급여를 최고 수준으로 인상하겠다’ ‘이 사람은 오늘 당장이라도 승진시킬 수 있다’ 등에 5점 척도 또는 yes/no로 대답하게 한 것입니다. 또 팀 리더와 팀원과의 면담에서 팀원들이 앞으로 어떻게 최고의 성과를 내게 할 것인지에 대해 적어도 분기별로 한 번 이상씩 말할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대화의 빈도와 팀원의 업무 몰입도 사이에 직접적인 상관 관계가 있다는 데 착안한 것입니다. 딜로이트 사례에서 명심해야 할 교훈은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할 당면 과제를 발굴하고, 과거의 틀을 완전히 벗어던지는 혁신 방안을 찾으라는 점입니다. 셋째, 경영지식을 습득해야 합니다. 이는 회사가 종업원에 대한 모든 데이터를 이해하고 이런 인적자본 활용을 위해 수준급 분석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누가 가장 우수한 지원자이고 어떤 기법이 생산성을 증진시키는지 밝히기 위해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미국의 건강보건 공기업인 시그나는 정교한 데이터를 활용해 가장 우수한 실적을 낸 직원을 알아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넷째, 금전적 이득을 강조해야 합니다. 새 제도를 도입할 경우 얼마나 비용을 줄일 수 있는지 계량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타 부서에선 최소 30년 전부터 도입된 ROI 평가를 HR팀만 적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비용과 이익의 계량화가 비즈니스를 위한 의사결정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겠습니다. HR은 장기전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이 장기 계획에 맞춰 인재 확보 방침을 명확하게 세우지 않습니다. 이익 창출이 우선이지, HR은 보조적인 역할로 치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를 위해 HR팀은 장기적인 HR의 비전이 회사의 당면과제와 조화를 이루게 해야 합니다. HR의 역할을 한정짓지 말고, ‘뉴 HR’의 비전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HR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는 시점이 개혁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말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