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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내다보는 경영01
2017-05-29 | 조진서 에디터

안녕하세요, 조진서입니다. 주주에게 최대의 이익을 돌려주면서 회사도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기업 지배구조와 성과에 대한 최신 논문을 소개해드립니다. 하버드경영대학원 조지프 바우어 교수와 린 페인 교수가 HBR에 실은 논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주주라고 해서 꼭 기업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주인의식을 갖고 행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헤지펀드, 벌쳐펀드 등이 우량기업을 사들여서 자산을 조각조각 팔아버리는 일 들어보셨죠? 게다가 요즘은 컴퓨터 알고리즘 투자기법의 발달로 주식 보유기간도 대폭 줄었습니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1960년대 주주들의 평균 주식 보유 기간은 8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평균 8개월로 줄어들었습니다. 고작 8개월 지분을 보유하는 사람을 과연 그 기업의 ‘주인’이라고 불러야 하느냐,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과정에서 그런 사람들의 요구를 어디까지 들어줘야 하냐는 것이 바우어 교수와 페인 교수의 문제의식입니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이고, 경영자는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대리인일 뿐이라는 생각, 이른바 ‘주주자본주의’는 경제학의 ‘대리인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우어 교수는 이런 대리인 이론이 법적으로는 근거가 불명확하다고 지적합니다. 상법을 뒤져봐도 ‘주주가 법인의 주인이다’라는 문구는 나오지 않습니다. 법인의 주인이 주주라고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법적으로는 법인은 마치 살아있는 한 명의 인간, 즉 자연인처럼 독립된 개체의 대접을 받습니다. 개인이 개인소득세를 내듯이 법인은 법인소득세를 내는 것도 그 때문이죠. 이렇게 법인이 하나의 독립된 개체라느 것을 경영학에서는 실체 이론, ‘엔티티 씨오리’라고 부릅니다. 주주 중심의 대리인 이론이 있다면, 기업 중심의 실체 이론이 있는 셈입니다. 이 두 가지 이론의 대비점을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볼까요?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주주중심주의, 즉 대리인 이론에서는 기업이라는 것은 주주의 부를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 혹은 법적 허구라고 생각을 합니다. 허구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업에게 어떤 사회적 책임 같은 것을 물을 수도 없고요. 기업과 기업의 경영자는 주주를 위해 돈만 벌어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기업을 운영하면 장단점이 있습니다. 일단 총주주수익률 지표 하나만 생각하고 경영하면 되니까 기업 운영이 심플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법인세를 적게 내기 위해 해외에 있는 조세회피처를 사용한다든가 하게 되는 것이죠. 또 회사의 장기적 성장에는 관심이 없는 단기 주주들의 입김에도 취약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사업은 도외시하고, 자산을 매각하거나 주주배당금을 과도하게 지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 이번엔 대리인 이론에 맞서는 기업 실체 이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기업 실체 이론에서는 기업 즉 법인이 하나의 법적인 실체이며, 법인도 자연인처럼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버는 것 외에도 사회적 윤리규범에 따라 성실한 기업 시민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기업 실체 이론에서는 주주가 법인의 주인이 아니라 법인의 자본 공급자라고 봅니다. 자본을 공급하는 대가로 주주총회 의결권도 받고 감사청구권도 받는 등 일정한 권리와 책임을 주고받는 계약관계일 뿐이지, 어떤 주종관계는 아니라는 것이죠. 그럼 우리와 같은 기업 임직원의 역할은 이 두 가지 이론에서 어떻게 달라질까요? 대리인 이론에서는 경영자와 기업 임직원은 말 그대로 주주의 대리인입니다. 반면 기업실체 이론에서는 대리인이 아니라 수탁인이라고 봅니다. 대리인과 수탁인은 어떻게 다를까요? 영어에서 대리인은 agent,수탁인은 fiduciary라고 하는데요, 쉽게 얘기해서 대리인은 누가 시키는 그대로 해야 하는 사람이고, 수탁인은 재량권을 갖고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한 어린이의 부모는 대리인이 아니라 수탁인입니다. 어린이를 보호하고 어린이를 위한 여러 가지 의사결정도 대신 내려주어야 하는데, 어린이가 원하는대로만 해주는 게 아니죠. 애가 밥을 안 먹고 과자를 먹겠다거나, 학교에 가지 않고 PC방에 가겠다거나 하면 들어주지 않고 혼을 내야겠죠. 이것이 대리인과 수탁인의 차이입니다. 그럼 기업 실체 이론에서는 왜 경영자가 주주의 대리인이 아니라 수탁인이라고 보는 걸까요? 또 왜 하버드대 교수들이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을까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이젠 주주들이 기업에게 좋은 일이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루에도 수백 회 주식을 샀다팔았다 반복하는 주식 트레이더나, 자신의 포트폴리오 안에 수백 개의 기업 주식과 채권을 담아넣고 있는 펀드매니저가 그 개별 기업들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장기보유에 대한 책임감도 전~혀 없지요. 앞서 말했듯이 미국의 평균 주식보유 기간은 8개월에 불과하고, 거래되는 주식의 85%가 증권업자 명의로 되어있다고 합니다. 기업 실체이론은 이런 증권업자들에게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을 맡겨서는 안 되고, 기업 임직원들과 경영자가 회사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적절하게 자유재량으로 판단해야 하는 수탁인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 아니라고 보는 두 번째 이유는, 주주가 회사의 활동에 대해 상당부분 면책을 받기 때문입니다. 만일 주주가 진짜로 기업의 주인이라면, 또 기업이 누군가에게 해를 입혔거나 누군가에게 빚을 갚지 못한다면 주주가 주인으로서 대신 책임져줘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법률에 따르면 주주는 기업의 부채나 기업이 제 3자에게 입힌 피해에 대해 대신 보상할 책임이 없습니다. 어떤 회사가 은행 부채를 갚지 못하고 파산했을 때, 주주는 그 빚을 대신 갚을 의무에서 면제됩니다. 그 피해는 채권자인 은행과 국가 등이 나눠서 부담하게 되지요. 이것을 주주의 ‘유한책임’이라고 하죠. 이렇게 책임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주주가 기업의 온전한 주인이라는 주주자본주의가 틀렸다고 보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주주 개개인의 목적과 주식 보유기간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이들을 뭉뚱그려서 하나의 소유자 취급을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연기금이라면 보유 주식에서 장기적, 안정적 수익이 발생하기를 원하겠지만 헤지펀드라면 단기 배당을 올리기를 원하겠지요. 주주가 회사의 주인이라 쳐도 대체 어느 주주의 이해관계에 장단을 맞춰야 하는지가 불분명하다는 현실적 문제가 있습니다. 이렇게 바우어, 페인 교수는 HBR논문에서 대리인 이론에 의한 주주자본주의를 비판했습니다. 그 대신 기업은 기업 그 자체가 하나의 실체라는 기업 실체 이론을 옹호하면서, 기업 경영자들과 이사회에게 다음과 같은 사항을 주문합니다. 첫째, 기업은 주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업 그 자체의 장기적 이익을 위한 의사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유능한 리더와 경영진이 있어야 하며, 이들은 회사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 고려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둘째, 기업은 주주수익 극대화뿐 아니라 국가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 상품과 서비스 제공 등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 사회 구성원으로서 윤리규범도 지켜야 합니다. 셋째, 기업의 이사회는 특정 주주집단이나 특정 이해관계자집단의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말고, 주주의 대리인이 아니라 수탁인으로서 행동해야 합니다. 오늘은 주주와 기업의 관계, 그리고 기업 실체 이론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이어서, 하편에서는 한국의 기업 현실에서 바우어 교수와 페인 교수의 기업 실체 이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말씀드리고, 또 역사적으로 기업의 실체는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하편을 기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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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서 HBR Korea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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