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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내다보는 경영02
2017-06-05 | 조진서 에디터

안녕하세요, 조진서입니다. 오늘은 ‘멀리 내다보는 경영’에 대해 얘기하는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상편에서는 하버드경영대학원 조지프 바우어 교수와 린 페인 교수가 HBR에 발표한 논문을 소개해드리고, 특히 ‘기업 실체 이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이것을 한국적 현실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상편을 보시지 않은 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쉽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지난 시간 요약을 해보죠. 그동안 많은 사람들은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며 기업임직원은 주주의 명령을 받고 일하는 대리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법적으로 볼 때 근거가 부족합니다. 기업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법적 실체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이른바 기업 개체 이론이 요즘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 경우 주주는 기업의 주인이 아니라 자본공급자에 불과하고, 경영자는 주주의 대리인이 아니라 수탁인으로서 재량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리인 이론이 옳으냐, 기업 개체 이론이 옳으냐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나라마다, 기업마다, 또 시대에 따라 사람들이 기업에 부여하는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대리인이론과 주주자본주의가 힘을 받았던 70~80년대 미국에서는 그게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구요, 2010년대에 기업 개체 이론이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 역시 나름대로의 필요성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업 개체 이론에 좀 더 무게를 실어주게 됩니다. 세계 최초로 주식이 공개적으로 거래된 회사는 1602년 창립된 네덜란드동인도회사인데요, 이 회사나 다른 초기 주식회사들은 대부분이 국가 경제발전 사업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해외 식민지 운영, 철도 부설, 운하 건설, 대륙간 무역처럼 장기간 많은 돈의 투자가 필요하고 또 리스크도 높아서 일개 개인 사업자가 하기 힘든 일들을 하기 위해서, 정부 주도로 차터, 즉 정관을 허가해주는 것입니다. 초기 주식회사에서 대부분의 주주는 자본을 대는 사람일뿐이지 경영에 개입하지는 않았습니다. 일례로 네덜란드동인도회사는 처음 10년간은 주주에게 배당도 주지 않았고 재무제표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주주들이 주식을 언제든 사고 팔수 있는 자유권을 주고 또 증권거래소라는 판을 깔?팁?것이죠. 한국 역시 포항제철, 한국전력 같은 일종의 국영사업체가 초기의 주식거래를 선도했는데 이들 역시 국가 경제개발계획의 일부였습니다. 주식 소유권은 민간에 있어도 경영은 국가가 했죠. 주주의 권리는 20세기 들어서 강화됐습니다. 대규모 국가 인프라 사업뿐 아니라 작은 규모의 소비재 사업을 영위하는 주식회사들도 많아지면서 민간 주주 특히 금융자본의 힘이 세졌습니다.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1970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기고한 글이 유명합니다. 이 글에서 프리드먼은 주주가 법인의 소유주이며 경영자는 주주의 대리인이다, 그리고 법인 자체에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의무가 없다고 묘사했습니다. 뭐 사회에 좋은 일을 하고 싶으면 그건 주주가 알아서 할 일이지, 법인은 주주에게 돈을 벌어주는 데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까지 이런 주주자본주의가 금과옥조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2008년의 금융위기 이후 영미권에서는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비판론과 반성론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식 주주자본주의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의 대기업들은 대부분 재벌가문의 지배권 아래 있고 혹은 정부가 경영진을 임명합니다. 일부 재벌 기업의 경우 창업자 가문의 보유 지분율은 높지 않은데도 경영권은 독점적으로 행사를 하다보니, 소액주주들의 항의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해외 투기자본과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격을 받기도 합니다. 과거 SK그룹과 또 삼성그룹이 그런 해외 펀드들의 타깃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서울대 경영학과의 김우진 교수가 HBR한국어판에 바우어 페인 교수의 기업 개체 이론에 대한 반론을 제시했습니다. 김우진 교수는, 기업 개체 이론을 한국에서 여과 없이 받아들일 경우 소액주주들의 권리 행사를 방해할 수 있고 재벌 가문의 경영권 독점을 옹호하는 논리로 쓰일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아직 한국 기업들은 일반 주주들의 권리조차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는데, 여기서 기업 개체 이론까지 적용하자는 건 너무 앞서간다는 것입니다. 김 교수는 또한 주주들의 재산권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어느 벤처캐피탈리스트가 혁신적인 기업에 투자를 할 것이냐고 묻습니다. 더 나아가, 4차 산업혁명과 같은 큰 변화를 직면하고 있는 시점에서 월급 받고 일하는 경영자보다는 본인의 돈을 투자한 사업가, 앙트리프리너가 좀 더 절박함을 갖고 변화에 잘 대처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제시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과연 한국에서 기업 개체 이론은 시기상조이며, 일단은 미국이 70~80년대 그랬던 것처럼 모든 주주들의 권리를 찾는 데에 먼저 집중해야 할까요? 저는 이에 대해 좀 유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솔직히 바우어/페인 교수의 이론에 더 끌리는 입장입니다. 김우진 교수 말처럼 한국만의 특수성은 있지만, 한국의 기업 역시 근본적으로는 주주 개인들과는 분리되는 하나의 실체로 인정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직 한국의 주주자본주의가 영미권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꼭 거기 먼저 도달한 다음에 다음 단계로 진화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다 아시겠지만, 개인사업자로 사업을 하는 것과 법인으로 사업을 하는 것의 차이가 있죠. 바로 내 돈과 회삿돈을 분리해서 취급한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법인이라는 제도, 유한책임제라는 제도가 도입된 것부터가 법인과 주주의 책임을 구분하려는 목적입니다. 이것은 미국이든 한국이든 다를 바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바우어 페인 교수가 지적하는 것처럼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폐해는 미국이든 한국이든 똑같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밀리세컨드 단위로 주식의 손바꿈이 일어나고 주식거래 대부분이 증권업자들의 손에서 일어나는 마당에, 여전히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는 흘러간 유행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필요하다면 중간단계를 생략하고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자본주의의 모습으로 직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기업의 목적과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원래 모든 철학이나 법체제는 논쟁으로 발전하고 진화하는 것이죠.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습니다. 미래에는 법인의 역할이 더 커질 것입니다. 자본주의 종주국인 영국의 경우 향후 4,5년 안에 법인의 수가 자연인, 즉 시민의 수를 넘어설 것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매년 신설되는 법인 개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개인사업자들의 영역으로 생각됐던 부동산 전월세 시장까지도 이제 법인들의 활동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자율주행차나 로봇과 같은 미래 기술에 법인 제도가 적용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법인은 이미 하나의 로봇이나 다름없습니다. 상주하는 직원이 ?毬さ?없이 컴퓨터 프로그램만으로 금융투자를 하는 페이퍼 컴퍼니의 경우는 이미 하나의 로봇이라고 볼 수 있겠죠. 자율주행차와 같은 영역에도 법인 제도가 도입될 수 있지 않을까요?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내더라도 소유자의 법적인 책임과 분리해서 따질 수 있게 도와줄 것입니다. 지금까지 두 편에 걸쳐서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또 ‘멀리 내다보는 경영을 위한 지배구조는 무엇인가’에 대해 정리해드렸습니다.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얘기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네요. 당장 물건 하나 더 파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얘기였지만, 우리가 다니는 회사라는 것이 과연 본질적으로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면 HBR에 실린 바우어 페인 교수의 글, 또 김우진 교수와 저의 글을 찾아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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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서 HBR Korea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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