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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기업들이 지식재산권을 공유하는 이유
2017-09-21 | 장윤정 에디터

안녕하세요, 장윤정입니다. 항공기 제작회사인 에어버스, 글로벌 배송 업체인 DHL, 포크레인 등 중장비를 만드는 글로벌 기업인 캐터필러, 세계적 통신장비 업체인 시스코...이들 기업 모두 해당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기업입니다. 물론 전혀 다른 분야에서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업적 연관성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2015년 10월, 베를린 근교 낡은 맥주공장에서 이들 거대 글로벌 회사의 고위 임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사업적 연관성이 거의 없는 이들 회사의 고위 임원들이 왜 모였을까요? 최근 혁신분야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네이선 퍼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 등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새로운 개념의 혁신 접근법인 ‘생태계 혁신’의 대표적인 사례로 ‘베를린 랩’이란 이름이 붙은 이 베를린 모임의 사례를 제시했습니다. 네이선 퍼 교수는 미래의 혁신은 이처럼 거대 기업들이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생태계 혁신이 주도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오늘은 생태계 혁신의 핵심 내용을 요약해드리겠습니다. 생태계 혁신은 R&D제휴, 전통적인 파트너십 등 기존 접근 방식과는 엄연히 다릅니다. 보통 다른 기업들과 협업을 하려면 지식재산권을 어떻게 나눠가질지 여부를 놓고 치열한 협상을 해서 복잡한 합의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생태계혁신은 이런 복잡한 지식재산권 합의 없이 아이디어를 빠르고 민첩하게 상용화하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그리고 초기부터 복수의 파트너들이 한꺼번에 모여 머리를 맞댑니다. 어떤 기업도 고객이 필요로 하는 솔루션을 시장이 원하는 속도에 맞춰 단독으로 내놓기는 어렵다는 믿음 때문이죠. 그런데 초기 성과는 놀라울 정도라고 합니다. 에어버스, DHL, 캐퍼필러가 참여한 팀은 공장, 창고 등을 디지털화 하기 위한 조인트벤처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를 통해 향후 10년간 60억 달러의 신규매출과 34억 달러의 비용 절감효과가 나타나리라 추산됩니다. 시스코는 나이키, 코스트코, 비자, 주택제품 판매업체 로우스와도 팀을 이뤄 소매영업 분야에서 생태계 혁신을 추진하는 한편, 금융 분야에서도 곧 협업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물론 협업 프로젝트들 모두가 탁월한 성과를 내지는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참가 기업들이 생태계 차원에서 혁신역량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은 명확합니다. 시스코가 실제 경험한 생태계 혁신 사례를 집중 분석해서 유사한 생태계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어떤 단계를 거쳐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시스코는 디자인 사고, 린 스타트업에서 활용하는 도구와 방법을 활용해 네 단계로 수개월에 걸쳐 프로세스를 진행해서 생태계 혁신을 추진했습니다. 일단 첫 번째 단계는 ‘중점 구역’과 혁신파트너를 찾는 과정입니다. 생태계 혁신을 주도하는 기업은 중요한 사업 기회가 있는 영역, 즉, 네이선 퍼 교수의 표현대로 ‘중점구역(focus zone)’을 찾아내야 합니다. 중점구역을 찾는 데는 파트너들의 역량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파트너기업을 찾을 때에는 △혁신 역량이 있는지 △내부 혁신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지 △스타트업과 함께 일하거나 투자해본 경험이 있는 지 세 가지 차원에서 잠재적 파트너들에 대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파트너들이 반드시 동일한 산업에 속할 필요는 없지만 그들은 모두 주최 기업 또는 파트너들과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지점을 잘 찾아내야 합니다. 실제 베를린 랩의 경우에는 모든 참여자들이 이익을 볼 수 있는 영역을 잘 찾아냈습니다. 참가 기업들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최적의 공급망을 구축할 경우 모두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참가기업 모두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과거 디지털 공급망 구축 경험이나 지식이 없는 기업들도 열성적으로 참가했고 각자의 통찰력과 자원을 모두 총동원해서 협업을 진행했습니다. 성공적인 생태계 혁신을 위한 2단계는 문제를 발견하고 규정하는 단계입니다. 시스코에서 생태계 혁신을 담당하는 팀은, 이를 준비하는 작업에만 3개월을 투자했습니다. 고객이 직면한 진정한 문제가 무엇이며 기업들에게 가장 큰 기회를 제공해줄 이슈가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전문가, 고객에서부터 수십 명의 임원들과 토의를 했죠. 그 뒤에 단 하나의 문제점으로 도전과제를 좁혔습니다. 예컨대 앞서 소개한 베를린 랩의 도전과제는 적응형 배송서비스, 이 한가지였습니다. 최종적으로 정의되는 문제는 단 하나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어 3단계는 참가자를 모아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단계입니다. 생태계 혁신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단계는 바로 디자인적 사고와 린 스타트업 접근방식을 적용한 이 단계입니다. 실제 베를린랩 참가자들은 5개의 팀을 만들었습니다. 각 팀원들은 가볍게 명상을 하고 나서 구글 글래스를 개발한 사람의 강연을 듣고 디자인적 사고 등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팀별로 나눠서 30분 동안 아이디어 제안, 30분 동안 프로토타입 제작, 30분 동안 잠재 고객의 피드백 받기 등의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적응형 배송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프로토타입이 제시되고 피드백을 수용해 더 발전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게 됩니다. 물론 팀원들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전문가들이 투입됩니다. 프로세스 전반을 관리하며 코치 역할을 하는 가이드, 아이디어를 시제품으로 구현하는데 도움을 주는 디자이너, 이 과정을 문서로 기록하는 기록 전문가 등이 팀원들을 적극 지원합니다. 초기 프로토타입은 단순한 그림이나 스토리보드를 오려내 만든 그림이지만 후기 프로토타입은 엔지니어, 해커, 코딩전문가로 구성된 팀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진 그럴듯한 디지털 인터페이스가 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약속을 이끌어내고 후속조치를 확보하는 단계도 중요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각자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실험을 해본 5개 팀들이 전문가와 투자자들, 다른 참가조직의 임원 등으로 구성된 패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됩니다. 혁신 결과물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나면 투자를 원하는 임원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투자 약속을 해야 합니다. 혁신 사이클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제한된 시간 안에 의사결정을 하도록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참가 기업들이 모두가 아이디어를 실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제품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 생태계 혁신이 초기 단계인데다 많은 프로젝트가 상업화도 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태계 혁신 프로그램으로 제시된 아이디어의 75%는 사내 프로젝트, 혹은 조인트 벤처 등의 형태로 상업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꽤 놓은 성공률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상업화 비율이 높은 이유는 생태계 협업 참가자들이 이전에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기업과 함께 작업을 했기 때문에 새롭고 유용한 아이디어가 도출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상용화로 이어지지 않았더라도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고객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도 큰 장점이라고 참가자들은 말합니다. 물론 생태계 혁신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업이 직면한 여러 도전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기업들은 생태계 차원에서 문제들을 해결해나가기 위해 엄청나게 다양한 아이디어와 기술을 모을 수 있습니다. 또 이 과정에서 협업의 기술도 터득하게 됩니다. 혁신 경쟁의 시대, 생태계 혁신 이라는 새로운 혁신 기술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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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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